노부인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반려정원
노부인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반려정원
  • 이수정 기자
  • 승인 2018.01.23 15:35
  • 호수 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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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송성자씨의 개인정원
노부인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반려정원
노부인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반려정원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날 찾은 정원에는 감국향이 코끝을 스치며 찬바람이 가득했다. 분홍구절초가 쌀쌀한 날씨에도 생기를 띠며 피어있는 모습에 발걸음이 멈춘다. 어느새 꽃이 지고 있는 정원이지만 다음해를 기약하는 가막살, 누리장나무, 오갈피, 좀작살나무에는 오색빛 열매가 다가오는 계절을 알리는 듯 알록달록 맺혀 있었다.

가을날 붉은 열매를 맺는 풍성한 팥배나무가 대문 앞에서 손님을 반긴다. 초본식물만 200종 넘게 심겨 있는 대지 1500㎡에 달하는 터의 정원주는 올해 일흔여섯의 노부인 송성자씨다. 송씨는 “기운이 있었을 때는 잡초 하나 없이 예쁜 정원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울창한 나무와 갖가지 야생초화가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행정구역상 양주에 속해있지만 서울 은평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현재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으로 서울과 인접했지만 공기는 더없이 맑다. 양주로 오기 전 종로구 서린동 주택에서 살 때도 약 300㎡ 정도의 땅에 정원을 일구었던 송씨는 오랜 서울살이를 접고 지난 2001년 남편과 함께 선산이 있는 이곳으로 이주했다.
가족 구성원 모두 꽃에 문외한이었으나 정원을 가꾸면서 남편이 잔디를 깎고, 딸은 어느새 꽃꽂이 취미를 갖게 됐다. 가드닝이 남긴 선물이다.

단풍 든 담쟁이덩굴
단풍 든 담쟁이덩굴

오랜 정원살이가 남긴 정겨운 사물들
처음 이사 온 후 원래 밭으로 이용돼온 땅에 집을 짓고 정원을 일구었다. 길과의 단차를 위해 흙으로 땅을 북돋았고, 낮게 설치된 펜스를 따라 차폐목을 심어 옆집과의 경계를 두었다. 그리고 돌담을 쌓아 운치를 한층 더하면서 정원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갔다.
송씨 또한 모든 가드너들처럼 타샤 튜더를 사랑한다. 돌담을 타고 물들어가는 담쟁이덩굴, 그리고 솥이 걸린 부뚜막, 곳곳에 걸려 있는 함석으로 만든 물뿌리개와 양동이는 옛 정서를 끌어와 정겹고 익숙하다. 오지항아리들도 정원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노부인의 세월 깃든 살림과 가드닝 도구는 단지 사물에 지나지 않지만 온갖 식물이 자라는 송씨의 정원에서는 어엿한 식구다.
송씨는 꽃과 잎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덩굴 줄기와 열매를 이용해 정원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이웃 건물의 시멘트 벽에 칡, 노박덩굴과 콩란으로 만든 리스가 식물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집안 거실에 걸린 조각보와 구식재봉틀이 말해주듯 집 안팎에는 노부인의 손 매무새가 담긴 아름다운 흔적이 가득하다.

감초, 구절초가 핀 가을정원
감초, 구절초가 핀 가을정원

돌확에 새침하게 띄운 플록스 꽃잎과 부레옥잠도 어김없이 그의 손에서 정성스럽게 연출됐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꼼꼼한 재주에 찾아오는 이들 또한 감탄한다. 감국이 핀 정원 한쪽 놓인 무쇠솥과 장작은 대문턱을 수없이 오갔을 손님들의 발걸음을 짐작케 하는데, 역시나 얼마 전 동창들도 이 정원에 모여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정원 곳곳에 놓인 손때 묻은 송씨의 물건들
정원 곳곳에 놓인 손때 묻은 송씨의 물건들

 

200여 가지 넘게 심은 야생화와 숙근초가 있는 정원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이래 가드닝은 거의 부인의 몫이다. 오래 전 생긴 지병에도 식물에 대한 사랑은 꺾이지 않았다.
현관 앞 인디언 핑크 색으로 핀다는 으름덩굴 아래 토종 맨드라미가 수줍게 피어 있다. 흔히 보는 맨드라미와 달리 유난히 작고 앙증맞다. 송씨의 정원에는 보리사초, 어수리, 고비, 산마늘, 하늘말나리, 백두산풍로초, 백선, 도라지모시대 같은 야생식물과 아름드리 나무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새소리가 또한 끊이질 않는다. 정원 모퉁이에 새집이 지어진 까닭이다.
봄이면 수선화, 아이리스, 미국 양귀비, 각시붓꽃, 하늘말나리, 금낭화, 큰꿩의다리가 피는데, 특히 작약을 좋아해 봄 화단을 수놓는다. 한택식물원에서 사온 노란색 꽃을 피우는 금꿩의다리를 비롯해 아침고요수목원, 평강식물원 등 인근에 있는 수목원과 식물원 방문길에 야생식물을 구입한다. 그밖에 생강나무, 청매화, 라일락, 계수나무, 단풍나무, 화살나무, 엄나무, 나무두릅, 장미 등 다양한 정원수가 계절을 알린다.
송씨는 “창포 잎에서 사과향이 나 예부터 단오 때마다 잎을 삶아 머리를 감았다”며, 뒤뜰에 9년 된 매실나무 밭 가운데 연못을 돌면서 해마다 5월이 되면 창포가 가득 핀다고 전했다.

소나무가 있는 겨울풍경
소나무가 있는 겨울풍경

소나무가 있는 겨울풍경
자연석을 둥그렇게 놓은 산책길에서 만난 화단에서는 아이리스, 작약과 함께 자란이 풍성하게 심겨있다. 난초과 식물인 자란은 여러해살이풀로, 충청 이남에서 자생한다. 송씨는 “중부지방에서 자란은 월동하기 어렵다. 낙엽이나 짚풀을 덮고 두꺼운 고무를 덮어 겨울을 난다”며 자란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란 꽃이 필 무렵이면 아끼는 테이블보를 꺼내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한다.
가을날의 빛바랜 헛꽃이 있는 철이 지나면 한겨울 눈 내리는 날 소복하게 눈 맞은 상록수 소나무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거실에 커다란 창이 있어 하얗게 눈으로 채워진 정원풍경의 충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각시붓꽃
각시붓꽃
갯모밀
갯모밀
산당화
산당화
도라지모시대
도라지모시대
어수리
어수리
분홍구절초
분홍구절초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
토종맨드라미
토종맨드라미
보리사초
보리사초

 

송씨가 정원에 심은 많은 야생화는 동네 주민들에게도 이미 이름 나 있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여전히 정원을 돌며 이런저런 정원 생각에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는 “이곳 마을에도 노인이 많다”며 고령화 사회에서 자신의 일을 찾았다. “오늘 아침에 애기원추리 한 무더기 심을 차였다. 정원을 돌보다보면 잡념이 없어진다. 정원 가꾸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 정신일도는 물론 움직이니 신진대사가 원활하다. 농사랑 달리 수확에 매이지 않다보니 언제고 하고 싶을 때 일한다. 남편이 출타해도 심심하지 않다.”
이어 “식물이 내 발소리를 기다리는 걸 안다.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식물이 있으면 ‘미안하다’ 인사한다”며 정원은 은인이자 반려 대상임을 강조했다.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위로받는 그에게 정원은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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