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S 위슬리 정원
RHS 위슬리 정원
  • 문현주 집필위원
  • 승인 2018.04.30 14:55
  • 호수 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현주와 함께하는 정원여행

[월간가드닝=2018년 3월호]

 

여러분들에게 유럽에서 단 한 곳의 정원만을 방문할 수 있는 가혹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단연 위슬리 정원(RHS Wisley Garden)을 추천한다. 이곳에는 잘 관리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있다. 그리고 정원 마니아들이 보고 싶은 여러 종류의 정원수가 있고 정원 소품 및 도구를 판매한다. 또한, 전 세계의 정원관련 책이 있는 도서관이 있으니 정원에 관한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


정원사나 정원 마니아들에게 해외여행은 다양한 정원수와 아름다운 정원을 볼 좋은 기회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눈이 라는 것은 새로운 지식과 사고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로 18세기 유럽에서는 ‘그랜드 투어’라는 여행이 있었다. 이는 영국의 상류층 자제들을 교육하는 목적으로 가정교사를 대동해 유럽 대륙을 여행했다. 주로 그리스 로마의 유적지,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상류 사회의 각종예법을 여행을 통해 배웠다. 이때 상류층 자제들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층에도 유행처럼 번졌다. 이즈음 유럽 대륙의 정원은 르네상스 시대에 발달한 이탈리아의 노단식 정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정원사 ‘르 노트르(Le Notre)’에 의해 평면 기하학식 정원이 완성되어 있었다.

영국의 지식층들은 유럽 대륙을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정원을 소개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자연을 찬미하는 문학가나 비평가들이었다. 그리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정원을 비판하면서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연 풍경 또는 전원 풍경을 정원의 가치로 평가했다. 그런 시대 흐름은 그 당시 조원가나 정원사들에게 영향을 미쳐 지금의 풍경식 정원을 만들어 냈다.

RHS Wisley Garden의 아름다운 내부모습
RHS Wisley Garden의 아름다운 내부모습

 

이렇듯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고와 양식을 창출해 낸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경제적인 여유로 어렵지 않게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최근 일반적인 유럽 패키지여행에도 프랑스의 베르사유 정원과 같은 역사 정원이나 런던의 큐가든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정원 마니아들에게 이런 정원의 모습은 내 정원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정원 마니아들을 위한 테마여행이 시작될 때다.
앞으로 연재되는 ‘문현주와 함께하는 정원여행’에서는 주로 유럽에 있는 정원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며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혹시 기회가 되어 유럽으로 정원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RHS 위슬리 정원은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서리(surrey) 주의 위슬리(wisley) 지역에 있다. 렌터카 이용 시 런던 외곽순환도로(M25)에서 고속도로(A3)를 타고 이동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열차인 SWR(South Western Railway)을 타고 웨스트 바이플릿(West Byfleet)역에서 하차 후 택시를 타거나 5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했다면 그날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료 15.95파운드
를 11.55파운드(약 1만7300원)로 할인받을 수 있다.


위슬리 정원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RHS는 왕립원예협회(The Royal Horticultural Society)의 약자이다. 이 협회는 1804년 런던원예협회(The Horticultural Society of London)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1861년 알버트 왕자(Prince Albert)가 지금의 왕립원예협회로 개명했다. 현재 RHS 최고의 후원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Ⅱ세 여왕 (HM the Queen)이다. 영국에서 왕립기관(The Royal)이라는 호칭을 붙였으니 그 권위와 위상을 짐작할수 있다.


RHS는 원예 분야의 발전과 자선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200년이 넘도록 원예 품종개량, 전문 서적 출판, 정원사 교육 및 학교와 지역사회의 원예 활동 지원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고 위슬리 정원 이외에 3곳(Harlow Carr Garden, Hyde Hall Garden, Rosemoor Garden)의 정원을갖고 있으며 2020년 5번째 정원인 ‘Bridgewater Garden’이 개장할 예정이다. RHS는 전 세계의 원예 및 정원 분야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정원은 1878년 RHS 멤버였던 죠지 퍼거슨 윌슨(George Ferguson Wilson)과 사업가들이 24만3000㎡의 땅을 사 재배장으로 만든 것이 시작이다. 그들은 그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희귀한 식물 수집을 위해
오크우드 실험 정원(Oakwood Experimental Garden)을 이곳에 만들어 식물을 키웠다. 1902년 윌슨이 죽고 토마스 헨버리 경(Sir Thomas Hanbury)이 이곳을 사들였다. 그는 이미 이탈리아에 유명한 라 모르톨라(La Mortola) 정원을 만들었던 사람으로 이곳을 정원으로 꾸며 RHS에 기부했다.

 

지금 위슬리 정원은 97만1000㎡의 방대한 면적에 정형식 정원, 자연 풍경식 정원 그리고 여러 개의 온실 및 과수원 등이 있다. 이곳에 수많은 종류의 정원수가 있고, 다양한 정원 디자인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방
문객이 자신들의 정원에 응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모델 정원이 있다. 그리고 1907년에 시작한 연구소의 실험정원에서는 원예 품종을 개발하고 실험재배를 하고 있다. 위슬리 정원은 해마다 개발한 신품종을 영국전역에 보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추천하는 우수한 정원식물은 AMG(Award of Garden Merit)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반인에게 소개된다.


위슬리 정원이 정원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는 이유는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원사를 위한 다양한 가드닝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위슬리 정원에는 69종류의 강좌가 연중 고르게 106회강의로 진행하고 있다. 분야별로 원예(Horticulture) 27강좌, 정원 디자인(Garden Design) 9강좌, 정원 소품 만들기(Creative) 23강좌 그리고 사진촬영(Photography) 10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강좌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1일 코스부터 1년 코스까지 다양하다. 좀 여유 있게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한 두 강좌 들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워낙 인기가 좋아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이제 위슬리 정원을 둘러보자. 이곳에 도착하면 우선 축구장만한 주차장이 방문객의 규모를 말해 준다. 그리고 정원으로 들어서면 큰 안내판에 정원 지도가 있다. 여기서 자신의 탐방로를 결정해야 한다. 잘 계획하지 않으면 반도 못 보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넓기 때문이다. 길은 평탄한 길과 경사가 있는 길로 나눠 표시되어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도로의 경사도를 알려 주는 것이다. 정원 운영진의 세심한 배려가 관람객을 편하게 만든다.

RHS 위슬리 정원의 지도
RHS 위슬리 정원의 지도

 

안내판 앞에서 오른쪽을 선택하면 위슬리 정원의 상징인 긴 사각형의 연못(Canal)이 나온다. 연못은 연구소 건물과 연못 끝에 있는 로지아(Loggia : 한 쪽 또는 그 이상의 면이 트여 있는 방이나 복도) 사이에 있으며 시원스러운 분수가 높이 솟구친다.


연못을 내려다보며 편안히 앉아 있는 조각상은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 ‘왕과 여왕(King and Queen)’이다. 연못 주위에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는 벤치가 드문드문 로지아까지 놓여 있다. 그리고 연못의 가장자리 수면에 다양한 수련이 떠 있다.

로지아 뒤로는 벽으로 둘러싸인 월가든(Wall Garden)이 있다. 기하학적문양의 자수화단이 있는 정형식 정원이다. 그곳에는 잎의 색깔이나 질감을 비교할 수 있게 다양한 호스타가 식재되어 있다. 월가든을 나오면 야생화 정원을 지나 거대한 유리온실이 나온다.

 

위슬리 정원은 워낙 커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서너 시간이 걸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중간에 커피 생각도 나고, 다리도 아파서 음료나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쉴 곳이 필요하다. 미리 알아 두지 않으면긴 헛걸음을 할 수 있다.


먼저 넓은 잔디밭 옆에 있는 테라스 룸(Terrace Room)은 정식으로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식당은 보통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인데 아쉽게도 현재는 새롭게 단장 중이다. 2018년 가을에 다시 연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옆에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푸드 홀(The Food Hall)이 있다. 개인적으로 각자가 원하는 음식을 쟁반에 담아 계산대에서 값을 치루면되는 곳이다.


그리고 왼쪽에 넓은 잔디밭을 두고 온실 쪽으로 가다 보면 온실 옆에 글라스하우스 카페(The Glasshouse Cafe)가 있고, 과수원이 있는 언덕 위에는 오챠드 카페(The Honest Sausage at the Orchard Cafe)가 있다. 어니스트 소시지(The Honest Sausage)는 빵 사이에 소시지를 끼운 핫도그인데 영국의 다른 공원에서도 그 이름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마 체인점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출구의 서점 앞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와 간단한 샌드위치, 케이크를 팔고 있다.

다시 정원을 산책한다. 온실이 있는 호수에서 언덕을 오르면 암석원(Rock Garden)과 고산식물 온실(Alpine Houses)이 있고, 오른쪽으로 채소원이 있다. 채소원에는 ‘12달의 채소 키우기 달력’이 붙어 있으며 달력에는 씨 뿌리기, 심기, 작업할 일, 미리 준비할 일, 그리고 수확할 채소를 월별로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과수원과 실험원(Trials Field)이 그 뒤로 넓게 자리한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중앙 통로는 길게 잔디밭으로 되어 있다. 양쪽에 다양한 테마의 정원들(Country Garden, Mixed Borders, Bowes-Lyon Rose Garden, Model Gardens, Herb Garden, Vegetable Garden 등)이 모델정원으로 전시되어 있다.

정원을 나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를 지나게 된다. 정원수가 그려진 아기자기한 소품이 있는 곳이다. 생활자기, 냅킨, 앞치마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학용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원예 서적으로 가득 찬 작은 편의점 크기의 서점이 있다. 서점은 RHS에서 발행하는 정원 책을 비롯해 90% 이상의 책들이 정원과 관련된 책들을 판매한다.

 


그리고 정원을 완전히 나오면 오른쪽으로 식물 센터(Plant Centre)가 있다. 이곳에서 1만2000 여종의 식물을 판매하고 있어 영국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최상의 품질뿐 아니라 체계적인 전시와 화훼류의 꽃 색에 맞춘 다양한 색상의 포트도 재미있다. 아마 새로운 품종에 관심이 있는 정원사라면 여기서도 서너 시간은 훌쩍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직업상 이 정원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번에 위슬리 정원을 나오면서 또 다른 깊은 인상이 남는다. 넓은 잔디밭에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차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아마도 나는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그들의 정원 문화가 욕심나는 모양이다

문현주
서울대와 독일 Uni, Stuttgart에서 조경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조경설계사무소 ‘오브제 프렌’을 열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조경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월간 가드닝 초대 편집장을 지냈으며 양평 농원에서 ‘가든 디자인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에 독일, 영국, 프랑스의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유럽의 주택정원 1. 2. 3‘과 ’7단계 정원 디자인‘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