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가드닝] 자연이 주는 선물, 정원
[뒤죽박죽가드닝] 자연이 주는 선물, 정원
  • 이정철 집필위원
  • 승인 2018.08.06 08:35
  • 호수 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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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돌려줘야 할 소중한 생명, 정원

[월간가드닝=2018년 08월호] 뒤죽박죽 가드닝은 식물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벗어나 누구나 식물을 쉽게 기르고 가꿀 수 있는 재배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고 일반적인 책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부각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보는 이에 따라 이견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논란의 대상이 될 부분도 있으나 전적으로 식물을 키우면서 느낀 Know-how를 설명하는데 노력하였다.

뒤죽박죽 가드닝(Topsy-Turvy Gardening) 6탄

“자연이 주는 선물, 정원”

“자연에 돌려줘야 할 소중한 생명, 정원”

- 정원관리의 시작은 식물을 아끼는 마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보답이다.

- 정원활동에서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라.

- 정원관리의 시작은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이다.

- 식물의 잘된 관리법은 자연의 식물환경에서 찾아라.

- 정원관리의 평가는 100년 후에 보게 될 것이다.

- 사람을 대하듯 식물도 일관성 있게 관찰하고 대하여야 한다.

- 식물을 반려동물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여야 한다.

- 단순한 정원관리의 반복을 피해 다른 원예활동과 병행하여 활동하라.

- 식물의 진정한 의미를 보려면 3년 이상 키워라.

식물의 2차 성징기인 여름에 되면 이상하게 한 해가 벌써 다 지나간 것처럼 마음이 급해지곤 한다. 그런 느낌은 곧 가을이 찾아온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식물들이 사는 정원은 성숙의 단계에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재촉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식물들은 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갈아입고 있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사람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고 저마다의 맵시를 표현하듯 자연에 속한 식물들도 이러한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는 것이 사람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식물을 대하는 몇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저 식물은 꽃이 지면 볼 것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꽃은 매우 소중하고 인간들에게 보다 많은 것을 안겨주는 유익한 생명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물과 떨어져서는 안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직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식물을 자기의 일부라 생각하고 가꾸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에 대한 판단을 어렵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식물이 잘살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필자는 식물과 떨어져서는 안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더 오래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식물이 식물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늘 하던 습관처럼 다가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타샤튜터’의 정원으로 유명한 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식물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큰 의미의 자연으로 넓히는 것을 초점으로 맞춰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천상의 정원이라 불리는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과연 무엇이 특별하여 사람들의 미담에 오르내릴까?

타샤 할머니는 “아무리 큰 재물을 준다고 해도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이가 들면 더 멋지게 살 수 있으니까”라고 늘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일 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할머니의 정원으로 들어가 보면 백합, 클레마티스, 페튜니아, 마가렛, 튤립, 복사나무, 비올라, 물망초, 만병초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식물들이지만 과연 타샤 튜터 할머니는 당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식물을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아름답게 가꾸고 키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보통 식물 전공을 한 경우라면 ‘현장’ 즉, 식재 화단을 3년 정도 가꾼 경험이 있어야 어느 정도 식물에 대한 이해가 되는데 타샤 할머니는 아마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즐기고 사랑하는 지혜를 일찍 깨달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외국의 정원들을 보고 또한 국내의 수많은 식물원, 수목원 및 정원들을 통해 다양한 식물의 형태, 패턴 등을 익혀왔다. 일반적인 경우 앞쪽에는 작은 식물을 뒤쪽에는 키 큰 식물을 심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식물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계절적으로 종자, 단풍, 무늬 등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해 왔다.

그런데 타샤튜터 할머니의 정원에는 왜 이런 일반적인 식재 패턴이 없는 걸까?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볼 때마다 항상 신비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은 왜일까? 그건 아마도 식물 그 이상의 의미를 정원에 담았고, 또 식물과 정원을 통해 사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삶 속에 깊이 뿌리 내리는 타샤 할머니의 특별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타샤튜터 할머니의 정원을 보고서 정원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지게 되었다. 벌써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지가 17년 정도 되었으니 정원에 대해 야심차게 일하던 시기였는데, 기존에 생각하던 정원은 ‘무엇보다 내가 심은 식물이 정원에 잘 자라고, 심은 식물 이외에는 풀 한 포기 없어야 하며, 경관적으로 많은 돌과 나무 그리고 정원소재 등을 동원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최고의 정원이었다.

하지만 타샤튜터의 정원을 보고 알게 된 후 지금까지의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생각했고 나아가 정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식물을 사랑하고 가꾸고 아끼는 모든 이들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간혹 정원을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정원사들은 “아마도 내가 없으면 이 정원은 곧 풀밭이 될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은 내가 관리하는 것만큼 관리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마도 그건 식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판단된다. 대부분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정원의 의미를 자연 일부분을 나의 땅, 나의 공간에 심어 마치 자연경관을 보는 듯 느낌을 주도록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정원은 늘 나와 함께하지만 내가 없어도 누군가가 돌보고 함께 할 여지를 만드는 식물이 있는 공간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정원은 ‘내 것도 아니고 당신의 것도 아닌 결국 인간이 만들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식물이 사는 공간’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원에 심은 식물이 점점 더 크게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처음 생각하고 원했던 정원의 형태와 크기로 식물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욕심일 뿐 생명체인 식물은 인간의 욕심을 모르는지 자기의 삶을 찾아가곤 한다. 결국 정원은 시간의 흐름에 맞게 서서히 성장하며 결국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모습보다 훨씬 웃자라고 성장한 모습의 형태로 발전해 결국 자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타샤튜터 할머니의 정원도 해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초기에 일군 밭의 나무는 성장해 그늘이 되고, 그 아래서 자라던 풀과 꽃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공간을 찾아 심기도 하고 또 새로운 식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곤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원은 인위적으로 인간의 보기 좋게 꾸며진 하나의 공간에 지나지 않으나 진정한 정원은 자연과 함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혹자들은 정원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물어보곤 하는데 그동안 필자가 대답한 답변은 시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정원에 대해 공부하던 초기에는 식재된 식물을 위해 잡초 제거에 노력을 기해야 한다고 했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했던 중기에는 경관에 어울리는 식물의 식재를 권장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자연과 동화될 수 있는 식물을 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원은 ‘자연 안에서 식물이 스스로 강하게 이겨나가고, 인간의 보살핌이 더해지며, 후대에도 영속성이 있는 식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인 것이다.

아울러 그런 식물을 가꾸는 삶속에서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원예활동을 병행한다면 더욱 좋은 전원생활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원예활동을 보면 식물의 부산물을 이용한 공예나 세밀화, 자수 등 탸사튜터 할머니의 삶속에서 보아왔던 원예활동들을 많이 따라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라 생각된다.

평생의 삶을 식물과 함께한다면 지루하고 나른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자. 타샤튜터 할머니의 정원에서 본 것처럼 수많은 원예활동은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진정한 정원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 좋게도 나는 정원분 야에서 감사한 두 분의 선구자를 만났다. 한 분은 대학 시절 정원분야를 공부하도록 영감을 주었던 ‘천리포수목원’의 (고)밀러 원장님이고, 다른 한 분은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택식물원’의 이택주 원장님이다. 이 두 분의 삶은 정원과 정원활동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신 분들이다.

(고)밀러 원장님은 타국의 땅인 천리포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수목원 조성을 하시며 자리를 지켰고, 이택주 원장님 또한 평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가드너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정원을 지켜 온 분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날 정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땀 흘려 노동하며, 시간이 흐른 후 이 식물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고민하며 공간을 조성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몇 십 년이 지난 ‘천리포수목원’과 ‘한택식물원’은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정원을 생각하는 생각과 수준도 다르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정원의 관점에서는 이 두 곳은 너무도 훌륭한 정원임은 틀림없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정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답은 하나로 모인다.

 

그럼, 우리도 타샤튜터 할머니처럼 정원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첫째, 취미로 정원을 가꾸든지 직업으로 정원 일을 하든지, 어쨌든 처음 가졌던 ‘식물에 대한 마음가짐’은 진정성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사람에게 정원에 있는 식물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산에 자주 가라고 권한다. 이유는 정원에 심어진 식물도 원래는 자연 상태에서 있던 것을 옮긴 것이므로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환경, 기후, 토양 등을 잘 살피고 심는다면 좀 더 쉽게 때문이다. 만약 같은 환경을 맞출 수 없다면 그와 비슷한 환경, 즉 변화가 가능한 인자가 무엇인지 찾는 노력을 하면 된다. 정원의 고수인 타샤튜터 할머니도 아마 이런 과정을 무수히 반복했으리라 생각된다.

두 번째로 ‘원예적 활동 행위에 대한 일관성’이다.

정원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적인 작업이 쌓여야만 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적어도 3년 정도 반복된 작업이 있은 후 알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아서 1년만에도 결과를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원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은 미생물농약의 활용, 유기물퇴비의 사용, 식물의 내한성에 대한 검정 등 다양하다. 이런 시도들의 결과는 한 번에 알아내기 매우 어려워 다년간의 경험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지속성’을 말하고 싶다.

정원을 가꾸고 보살피고 어루만지는 일은 다른 일에 비해 쉽지 않다. 정말 잘 가꿔진 정원들은 지속해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열정을 다해 가꾸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물은 아프다고 말을 하지만 식물은 말을 하지 못하는 생명이기에 가드너들도 식물관리는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정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해내며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좋은 뜻을 품고 정원을 조성하고 관리를 하지만 오래가지 못해 포기하고 접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무리 기후 조건이 좋더라도 자연을 벗 삼아 하는 일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정원 일은 무척이나 고된 노동과 심리적인 압박으로 여겨지는 게 예사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정원을 가꾸는 사람, 즉 정원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고 있는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식물과 정원은 모두 자연에게서 잠시 빌려온 것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을 다루는 많은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식물을 심는 일도, 식물을 예쁘게 가꾸는 일도, 보기 좋은 정원을 설계하는 것도 아닌 식물과 교감하고 그 의미를 새기는 일이다.

잠시 서 있기도 힘든 무더운 날씨에 최상의 정원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며 식물의 마음을 헤아리고 물을 주고, 건강상태를 살피는 그대들은 정말로 대단한 집념과 의지를 갖추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타샤튜터 할머니는 자연주의자 이전에 식물을 가꾸는 정원사였다. 지금 이 시각, 식물을 가꾸는 모든 정원사들을 깊이 존경하며 응원한다.

 

이정철(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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