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의 정원
선[線]의 정원
  • 이병철 집필위원
  • 승인 2018.12.04 14:04
  • 호수 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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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미학
정원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선, 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

[월간가드닝 68호=2018년 12월] 무엇을 상상하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모든 형태에는 반드시 선이 있어야 한다. 선은 주로 물체의 가장자리나 경계를 표시함으로써 면을 만들고, 면은 다시 형상을 만들기 때문에 선은 보여지는 형상의 기본 요소인 것이다. 정원의 경관구성에도 이용된 선에 따라 정원전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선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선은 크게 직선과 곡선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선을 긋는다면 어떤 선이 먼저 떠오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경험적으로 자로 그은 똑바른 선, 바로 직선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학습된 규격의 선들 속에서 수많은 선을 그리면서 줄서기를 배웠으며 그 라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탈선을 의미하는 사회규범에 익숙해 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효율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두 점 사이를 잇는 가장 빠른 선인 일직선.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살았고, 사지선다형 객관식에 익숙한 시험은 다름을 틀린 것으로 배운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사치인 듯 급하게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이 없고 또 진정한 동심과 아이다움을 상실하는 원인 또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서둘러 가버린 부모들과 아이들의 빠른 시간표 때문이란 생각인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이 땅에 태어나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시간만 바라보고 간다면 그 종점은 생의 막다른 골목 죽음인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우리의 삶은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덧없는 생존 기간이 아니란 것이다.

나무는 높이 태양을 보고 자라나지만 하늘높이 키만 크는 성장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수관폭을 키우며 휘어진 가지들을 펼쳐서 지친 나그네들과 지나가는 새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함께 쉼을 나누며 거목으로 성장하는 자연의 생태처럼 우리의 삶도 닮았으면 좋겠다. 자기앞길만 따라 키만 키워가는 직선이 아닌 구부러진 가지들을 펼쳐서 옆으로도 서로 나눈다면 자연이 그런 것처럼 이 세상이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직선과 곡선의 길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 Australian Garden 의 The scribbly path
직선과 곡선의 길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 Australian Garden의 The scribbly path

직선은 군인처럼 그 반듯하고 딱딱한 느낌 때문에 남성적인 선으로 또 곡선은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하고 자유스러운 다분히 여성적인 성격의 느낌이 있어 여성의 선으로 표현된다. 남성과 여성의 바디라인의 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오래전 읽어본 바둑책에서 “딱딱한 직선의 교차점 위에 던져지는 둥근 바둑 돌…. 어쩌면 직선은 곡선을 위한 구조물인 듯”이라고 한 표현은 딱딱하고 모난 바위들을 뚫고 동그란 생명의 씨앗 하나 뿌리내리고 우뚝 서 낙락장송으로 성장하는 생태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한 표현이다.

생명은 부드럽고 유연하여 어디로든 자유로움을 에너지로 발산하며 표현할 수 있지만, 생명이 없는 것들은 딱딱하며 경직되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홀로 된 느낌, 외부의 도움 없이는 다른 아무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삶과 죽음 역시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원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아우성치는 아름다운 공존의 현장이다. 그 모습은 활기 넘치는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생명의 색 초록빛 물결들이 주연이고 또 그 속에서 수많은 조연이 연출하는 생명의 선들로 얽히고설키며 아름다운 선형을 이뤄 경관을 완성해 가고 있다. 생명의 흐름을 표현하는 곡선은 자연의 선이고 자유스러운 선으로 정원 속 식물들의 선이기도 하다.

초록의 생명길을 표현한 듯 아름다운 정원의 선을 보여준 영국의 The Bressingham Garden
초록의 생명길을 표현한 듯 아름다운 정원의 선을 보여준 영국의 The Bressingham Garden

글·사진: 이병철 아침고요수목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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