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흙 만지는 여자로 살고 싶어
평생 흙 만지는 여자로 살고 싶어
  • 장현숙 기자
  • 승인 2019.04.19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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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한남미 씨, 3년 전 그 좋아하던 계절화초 물리고 제라늄 품종만 키워
베란다 250여개 키우고 자녀학교에도 30개 만들어 기증 후 손수 관리까지

 

봄이 되어 살아돌아오는 모든 생명들은 경이롭다. 저 여리고 고운 빛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 나오는 것일까. 자세히 보면 어제의 빛이 다르고 오늘이 빛이 다르다. 움트는 꽃들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있다보면 어느새 봄날은 간다.

글 장현숙 기자 / 사진 우승민 정원사진가

 

 

꽃샘추위가 살짝 기승을 부린 봄의 초입, 베란다 한가득 제라늄 사랑에 푹 빠져 있다는 일산의 한남미 씨 댁을 찾았다.

찬란하다고 해야 할까.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햇살과 베란다에 활짝 핀 제라늄들이 “제대로 찾아왔네요” 하고 반기는 듯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눈에 보아도 깨끗하고 맑은 빛깔의 제라늄은 고귀하고 우아한 분위기라 ‘식물 좀 키운다’ 하는 사람들이 왜 제라늄 매력에 빠지는지, 마니아 층이 두터운지 알려주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직접 손으로 풀 뽑는 손맛
한씨는 몇년 전까지 주말농장을 크게 했었다. 식물사전이나 텃밭백과사전을 보지 않아도 싹만 올라와도 무슨 식물인지 대부분 알고, 한번 손을 대면 무엇이든 잘 키워 땅에서 하는 일은 지치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땅의 재미는 남다르다. 주말농장하면서 어떤 이는 어떻게든 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검정 비닐을 씌우기도 하지만 그녀는 직접 손으로 풀을 뽑는 손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얼마나 재미가 있는데 그걸 비닐로 씌우냐”고 할 정도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갈수록 할애할 시간도 길어지는 법.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되니 밖이 아니라 집안에서 살림하고 아이들 돌보면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베란다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베란다는 한동안 다육이와 계절화초들로 가득했다가 다시 3년전부터 변화가 생겼다. 한씨가 제라늄 사랑에 푹 빠져 오랫동안 키웠던 화초들을 지인들에게 다 선물하고 베란다를 제라늄 품종들로만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키우기 힘들다는 제라늄도 한씨 손에서는 크고 실하게 자랐다.

제라늄·채송화 학교에 기증하고 관리해
작년부터는 한 화분에 3개씩 합식을 해서 30개의 화분을 만들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기증을 했다. 풍성한 제라늄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있자 학교에서도 인기만점이다. 교장선생님은 물론 운동나온 동네 주민들도 예뻐서 보러온다. 여름 방학때에도 물주러 학교에 다녀야 하고 겨울에는 월동이 안되니 다시 집으로 가져와 겨울을 난 후 3월에 학교에 가져다 준다.

보통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닌데도 그녀는 “꽃을 키우는 건 즐겁잖아요. 많은 사람이 보게 되고 특히 아이들이 이 꽃을 본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요. 학교에 기증할 채송화 삽목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식물을 가까이 하다보니 병충해, 분갈이, 삽목 등 꽃을 키우는 것에 남다른 감각과 느낌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실내에서 화분에 제라늄을 크게 키우고 싶으면 뿌리분을 크게 키우라고 귀띔한다. 뿌리가 커지고 몸이 커지면 분갈이를 앞당겨 해주어 2~3개월만에 크게 키울 수 있다. 분갈이를 한 후에는 땡볕에 내놓지 말고 반그늘에 2~3일동안 놓고 물이 마를 때까지 물을 주지 말고, 2~3일이 지난후 물을 준다. 이때 신문지를 깔아 신문지에 물이 흡수된 상태로 있게 하면 좋다.

제라늄은 잎모양, 꽃모양이 다양한 만큼 품종도 다양해 키우는 건 좀 까탈스런 편이다. 그래서 제라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품종을 흔둥이, 키우는 게 무난한 품종을 순둥이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육종이 잘돼 품종이 많고 별빛메리골드, 송살구, 송봄비 등 국내변종도 많은 편이다.

물주는 노하우도 제각각인데 저면관수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씨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방식이되 한번 줄 때 흠뻑주는 편이다. 꽃잎 때문에 미세하게 물이 나오는 노즐로 마니아들이 공동구매를 하기도 했다.

땅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그녀
한씨는 어려서 강과 산, 벌판이 어우러진 땅 전북 익산에서 나고 자랐다. 어딜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 일상이 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아버지가 가꾸는 정원의 장미를 보며 자라서인지 그녀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비만 오면 우산들고 나가 종일 채송화 삽목을 하는 재미에 빠졌고, 배추 심어야 할 밭고랑에 봉숭아를 잔뜩 심어 봉숭아 밭을 만들어 행복해하던 기억들이 지금도 그녀를 웃음짓게 한다.

가슴철렁한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중학교때는 코스모스, 과꽃 등의 꽃씨를 보이는 땅마다 뿌리곤 했는데, 집에 비상약으로 놔뒀던 양귀비 꽃씨를 보이는 집주변 길가에 쫘악 뿌려 양귀비 재배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잡혀간 일도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꽃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살림하고 밥하는 것보다 베란다에 나가 꽃을 들여다보고 키우는게 너무 좋고, 비만오면 가슴이 설레고 꽃을 사고 싶어 단골 꽃집을 찾는다는 그녀는 키우고 싶은 식물들을 실~~컷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농장같은 ‘넓은 땅’을 꿈꾸고 있다.

땅에서 노동을 하면 힘들어 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프면 풀 뽑으러 땅을 찾아간다는 그녀는 땅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러닝머신에서 한시간 열심히 뛰며 흘리는 땀보다, 오전내내 쭈그리고 앉아 있더라도 천천히 자연과 교감하면서 흘리는 땀은 몸이 개운해지고 식물들의 생명력에 가슴이 벅차오르며 뭔가 치유되는 것 같다. “꽃과 식물들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아요. 신경 많이 쓰고 잘 보살펴주면 예쁜 꽃으로 보답해요. 거기에서 행복을 얻어요. 가드닝을 하는 일은 제 성격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면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서 가드닝을 시작하면 어떻게 조성할지 머릿속에 다 그려보았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그녀는 손으로 하는 일이면 뭐든 척척해내고 심지어 예쁘다. 먹고 사는 일이 습관인 것처럼 그녀의 삶에 재봉틀과 뜨개질, 목공과 가드닝, 음악은 습관이다. 작년에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둘째 딸에게 원피스를 10벌 넘게 만들어 입혔다. 한번 꽂혀서 만들기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그래서일까 제라늄을 키우는 그녀의 모습은 거의 완벽쟁이에 가깝다. 토분이 보기좋게 열을 맞춰서 있어야 하고, 햇볕을 골고루 쏘이기 위해 선반이나 행잉에 화분을 걸고 빛이 부족한 날은 보라색 파장이 나는 식물조명 LED를 켠다. 실내에서 겨울을 난 풍성하던 꽃들은 여름이면 뿌리만 남았다가 봄이나 가을에 몸상태나 뿌리 상태를 보고 분갈이를 한다. 여름이면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온도를 유지하고 사계절 환기를 위해서 선풍기나 서큘레이션은 필수다.

제라늄을 키우다 보면 맘먹은 여행도 못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주는 타이밍과 양이 달라 일일이 확인하며 주어야 하기에 누구한테 맡기기도 부담스럽다. 제라늄 물주는 것에 며칠에 한번씩 주라는 공식은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좋아하는 바느질을 했고, 목공을 했고 가드닝을 했다. 1년에 한번씩 생일이 되면 크게 맘먹고 사야 하는 ‘공구’를 사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한다.

행복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한씨는 “두 딸이 자연과 교감할 줄 알고, 좋아하는 스포츠가 하나씩 있고, 마음을 다듬어주는 악기를 하나씩 다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감성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문득문득 생각도 쉬고, 마음도 쉬는 가슴가득 꽉 찬 선물같은 시간을 보내는 일상, 이만하면 참 행복한 일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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