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눈으로 정원을 보다
식물의 눈으로 정원을 보다
  • 정경주 기자
  • 승인 2019.07.0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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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손은주 씨의 흙사랑 정원

 

손은주 씨가 장미를 돌보고 있다.

 

우리 집은 사람보다 식물이 우선입니다. 사람이 편한 정원이 아니라 식물이 편한 정원이라고 할 수 있죠. 식물의 입장에서 번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봤을 때 보다는 식물이 봤을 때 편한 자리를 배치하죠. 될 수 있으면 식물이 자유롭게 자기의 특성을 나타내면서 살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정원의 경계가 없는 이유죠.” 식물 잘 키우기로 유명한 부산 기장의 손은주 씨. 그녀는 씨가 떨어져서 다음에 또 자라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식물이 맘껏 영역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주는 그녀를 만나 식물을 대하는 자세를 알아보았다.

 

 

 

가정집이지만 카페 같은 분위기, 나지막한 철문 사이로 환히 보이는 내부 모습은 분명 개인집인 것을 알면서도 홀린 듯 기웃거리게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날마다 꾸미고 정리한 듯 깔끔한 정원에 가지런히 줄 서 있는 화분들이 사람에 익숙한 듯 여유롭게 쳐다본다. 특히 입구를 꽉 채운 수많은 분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전시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정원 곳곳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초화류와 나무 그리고 소품들이 어우러져 단정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재미를 자아낸다.


특별히 컨셉을 가지고 만들진 않았다지만 계절별로 다양한 꽃이 피고 지는 진풍경이 이뤄지는 손은주 씨 정원. 이곳이 만들어지는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정원을 너무나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오셔서 그네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시곤 한다. 올 해 9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번 어버이날에 감나무 두 그루를 심어주고 가셨다. 나무 사랑이 극진하여 연로하셔도 자식에게 감나무를 물려주고 싶으셨던 어머니.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녀 또한 이제껏 정원 가꾸기를 게으르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식물공부를 해왔다. 덕분에 조경기능사, 화훼기능사, 원예치료사 등 식물에 관한 다양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15. 긴 세월만큼이나 식물 전문가인 그녀를 찾는 이도 많이 늘 어났다. 분재가 많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웃에서 분재를 키우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자제들은 모두 서울에 거주하여 분재를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을 소중하게 키워온 아버지의 정성을 알기에 장사치에게 팔아치우기도 싫었다는 자제들. 그래서 수소문 끝에 기장군 국화분재 제 1회 전시회 사무국장이었던 손은주 씨를 찾아 140~150점 정도 되는 분재를 부탁했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넓은 땅을 갖게 된 것도 분재들을 위해서였어요. 식물들이 편안하게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 총 세 번에 걸쳐 땅을 늘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100평이었던 것이 지금은 350평이 되었어요. 내 자녀가 좁은 방에 10명이 누워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불편해 보이잖아요. 식물들도 좁은 곳에 있으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싫어서 땅을 넓혔어요. 처음에는 정원 중심에 있는 정자쪽 소나무로 시작해서 조금씩 식물을 가꾸었는데 분재원 때문에 땅을 더 넓히게 된 거죠.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키운 분재.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주인 아닌 주인을 억지로 만나 적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더욱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나무 스스로가 행복해야 행복이다

손은주 씨는 매일 최소 1시간 이상 정원에 물 주는 일로 아침을 맞이한다. 도시인들은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녀의 정원에는 특별한 물이 존재한다. 지하수를 흘러내리게 해서 만든 정원의 생명수. 바로 우물이 다. ‘신천이라는 동네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물, 깨끗하고 좋은 영험한 물이 정원 곳곳에 스며들어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녀는 물이 좋아서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원 내에 울리는 음악 소리와 어우러져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내니 햇빛과 마주하는 식물들이 더욱 건강해 보인다.


한편 꽃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면서 그녀는 성격도 변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까칠한 면이 있었는데 정원에서 풀을 매면서 스스로 정신수양을 하게 되었다. 남들은 풀매 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지만 그녀는 흙과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흙사랑 때문인 것 같다. 옷에도 손에도 신발에도 항상 흙이 묻어 있는 손은주 씨. 평소 깔끔한 성격이지만 흙과 사는 게 너무 좋아서 더러워지는 것도 감수한다는데좋아하는 흙과 꽃이 모두 함께 있으니 그녀에겐 정말로 행복한 공간이 정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행복에 대해 그녀는 조금 다른 설명을 덧붙인다. “식물이 있는 곳은 그 식물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식물을 보고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심어진 그 나무가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껴야 하죠. 저는 식물에도 생명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화를 많이 합니다. 꽃을 만지며 예쁠 때는 정말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고, 자랄 때는 정말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꼭 말을 하죠. 때로 아픈 나무를 보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런 교감 자체가 잘 이뤄질 때 나무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죠. 식물도 인격체이기 때문 입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있어 사람보다 식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손은주 씨.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는 게 아니라 내 땅에 맞는 꽃을 심어야 하고, 내 땅과 내 땅에 있는 기운, 음지, 양지, 바람 등을 살펴야 한다면서 대부분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찾아 자기 눈에 들어오면 무조건 정원에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식물은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꽃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만들어 줄 수 없는 환경이면 그에 맞는 식물을 심어야 합니다. 음지식물을 양지에 양지식물을 음지에 심는 것은 정말 너무 무례한 짓입니다. 항상 식물을 식재하기 전에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

식물과 함께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깨달음도 얻게 되었 다. “저는 꽃이 피는 것도 좋지만 지는 것도 좋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여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죠? 나쁘게 생각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죠. 학교 성적, 직장에서의 승진, 취업과 돈 등을 중요하다고 여기고 그것에 실패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지만 멀리 보면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꽃을 오래 피우는 식물은 석 달까지 계속 지속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꽃은 보름 전후로 지게 됩니다. 꽃은 져야 다시 피죠.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미 꽃이 다 떨어져서 완전히 가시만 남겨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면 죽은 듯이 보이지만 다음 해 4~5월이면 다시 찬란하게 피는 것처럼 말이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수없이 많은 식물의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지만 꽃이 지려고 할 때 가장 향기로운 향을 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의 삶에서 청춘을 제일이라 꼽듯이 가장 화려하고 젊은 시절만을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는 지는 꽃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식물과 인간이 같은 삶을 살고 있어 더 깊은 인연임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손은주 씨는 앞으로 이 공간을 정원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공연이나 전시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생각이다. 좋은 공간은 많은 사람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식물들이 자유롭게 번식하고 자라나는 것처럼 그녀의 삶의 크기도 더욱 커지리라 기대하면서 식물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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