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수국/산수국
[나무이야기] 수국/산수국
  • 김동진 집필위원
  • 승인 2019.08.20 21:23
  • 호수 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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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함께 피어나 태풍처럼 사라지는 꽃

[월간가드닝 76호=2019년 08월] 우리나라에는 6월부터 장마가 찾아온다. 비가 내릴 때 정원을 걸으면 평소에는 맡아보지 못한 향기로 정원이 가득 채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는 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지상으로 나와 생기는 지렁이 똥냄새 또는 곤충들의 냄새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청량하고 맑은 냄새는 비가 내릴 때 흙 속의 미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지오스민’이라는 향기이다. 이 향기는 유독 비가 내릴 때만 우리 주변에 맴도는데. 그 이유는 빗방울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공기 방울이 생겨 마치 섬유유연제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날 정원을 걸어보자. 특히 여름에는 비가 올 때 향기가 더욱 진해지는 Iris(붓꽃과)와 수국, 그리고 숨겨왔던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친구가 많은가, 적은가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성격과 외모를 가지고 있고, 많은 친구들이 있다. 힘들고 지칠 때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거나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식물에게도 벌과 나비라는 친구가 있다. 꽃에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들이 모이는 이유는 바로 향기와 꽃가루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이 다 친구가 많은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수국이 그렇다.

혹시 수국의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수국의 향기를 모티브로 하여 방향제와 향수 등 다양한 아이템이 판매되지만 실제로 일반적인 수국은 무성화(無性花)이기에 향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무성화(無性花)란 꽃의 기관 중 암술과 수술이 퇴화하였거나 불완전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생식능력이 없는 꽃을 말한다. 수국은 암술이 없는 무성화이자 헛꽃이다. 무성화이지만 꽃은 존재하는 수국. 그 꽃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흔히 사진 속에서 볼 수 있거나 표면상에 노출된 것은 꽃이 아닌 꽃받침이며, 진짜 수국꽃은 꽃잎 속 가운데에 아주 작고 앙증맞은 얼굴을 숨기고 있다.

장마철 수국이 핀다면 그보다 일찍 피는 수국이 바로 산수국이다. 제주도를 기준으로 개화 시기를 보면 산수국은 6월 초순부터, 수국은 6월 중순 이후 개화하기 때문에 가장 일찍 피는 수국이 산수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수국은 개화 시기뿐만 아니라 꽃모양 역시 수국과 차이점이 있는데 수국이 공과 같이 동그란 꽃모양이라면 산수국은 마치 쟁반과 같이 넓적하게 꽃이 핀다. 수국이 향기와 암술이 없는 무성화라면 산수국은 암술과 수술이 존재하는 유성화와 무성화가 함께 개화하는 특징이 있다. 또 수국은 친구가 적은 꽃이지만, 산수국은 완전한 꽃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구가 많은 꽃이다.

토양의 PH에 반응하는 수국
산행하는 도중 길을 잃어버리면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거나 나무에 이끼가 자란 방향을 보며 길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식물도 어떠한 환경에 기준이 되거나 기후와 토양의 조건에 반응하는 식물을 지표식물(地標植物, indicato rplant)이라고 하며 그 대표적인 식물이 바로 수국이다.

수국은 토양의 조건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식물로 토양의 산도 즉 PH에 따라 꽃의 색이 바뀐다. PH는 0~14까지의 숫자가 있으며 중간값인 7(중성)을 기준으로 숫자가 낮으면 산성, 높으면 알카리성으로 구분한다, 수국에는 델피니딘(delphinidin)이라는 성분이 있어 산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 이온과 결합하여 푸른색 계통의 색을, 알카리성 토양에서는 주성분그대로 붉은색 계통의 꽃이 피고 흰색 수국의 경우에는 주성분(색소)을 제거하여 만든 것이다. 이처럼 수국꽃에는 과학적 원리가 포함되어 있고,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현재 다양한 색의 수국이 개량되고 있다.

한편 수국이 토성을 나타내는 식물이라면 자주달개비는 방사능의 농도를 짐작할 수 있는 지표식물이다. 자주달개비는 이름처럼 여름철 보라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이지만 방사능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일정 시간 이상 방사능에 노출이 된다면 꽃이 분홍색이나 하얀색으로 변하게 되어 실제로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지표식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식물이다.

이밖에도 오래전 유럽 탄광에서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인부들이 카나리아를 가지고 작업을 했으며 노랑코스모스는 담배 연기를, 나팔꽃은 아황산가스에 반응하는 등 우리 주위에 여러가지 식물이 지표식물로 활용되고 있다.

삼별초의 꽃 산수국
제주도 방언을 들어보면 정말 재미있는 단어들이 많이 있다. 식물을 예로 들자면 팽나무의 제주 방언은 ‘폭낭’이며, 때죽나무는 ‘종낭’, 삼나무를 ‘숙데낭’이라고 한다. 표준 식물명과는 전혀 다르며 방언으로만 듣는다면 어떤 나무인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수국의 제주방언은 무엇일까? 재미있게도 ‘도채비고장’이다. 필자는 수목원에서 학생들에게 해설할 때 도깨비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 드라마 도깨비 열풍이 불어서 이 꽃을 보고 배우 공유와 김고은을 떠올리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산수국을 ‘도채비’라고 하였는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제주도의 역사를 조금 공부하다 보면 오래전부터 ‘도채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기록이 바로 ‘삼별초의 난’이다. 삼별초의 난은 고려가 몽골에 대하여 복속 관계에 들어가는 초기에 일어난 군대의 반란으로 좌별초(左別抄), 우별초(右別抄), 신의군(神義軍) 등 3개 별초군을 총칭하여 ‘삼별초’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기리기 위한 유적지로 항몽유적지가 있으며, 삼별초의 꽃으로는 도채비고장, 즉 산수국을 이야기한다.

수국은 이름처럼 ‘물’과 연관이 깊은 식물이며, 대부분의 유래에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비단에 공과 같은 꽃을 수놓았다고 하여 ‘수구화‘라고 하다가 변형되어 수국이 되었으며 한자로는 ‘水菊’, 즉 ‘물속에서 피는 국화’라는 뜻이 있고, 영명은 ‘Hydrangea’으로 그리스어로 물을 의미하는 ‘Hydor’와 용기를 의미하는 ‘Angeion’의 합성어로 꽃모양이 동그란 물병을 닮아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수국은 아주 큰 꽃모양과 잎을 가지고 있으며, 덥고 습한 여름철에 꽃이 개화하므로 잎이 마르거나 꽃이 처지는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따라서 식물을 관리하면서 건조한 계절이 오면 이름처럼 자주 물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글: 김동진 제주 상효수목원 식물자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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