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원 탐방] 30년의 기다림, 3년에 담다
[개인정원 탐방] 30년의 기다림, 3년에 담다
  • 정경주 기자
  • 승인 2019.09.02 21:23
  • 호수 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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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조미정씨의 ‘시간을 넘어선 정원’
조미정씨의 정원
조미정씨의 정원

[월간가드닝 77호=2019년 09월] ‘하루종일 너만 본다. 깜깜해서 보이지 않아도, 너무 환해 눈이 부셔도 내 눈엔 너만 보인다. 넌 나의 꿈이었으니까…’

우연히 접했던 책을 보고 단번에 정원을 만드는 꿈을 가지게 된 사람. 식물 돌보는 것에 빠져 시간을 잊고 사는 하동의 조미정 씨다. 평생 잊지 못하던 첫사랑을 긴 기다림 끝에 만난 것처럼 그녀는 오늘도 꿈과 함께 있어 행복하다.

사랑은 이미 배꼽시계조차도 두손 두발을 다 든 듯 보인다. 특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꽃이라도 필 때면 그 모습을 보는 그 순간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녀에게 정원은 거의 첫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지나치면 좋지 않듯이 3년째 이 생활을 이어 가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산자락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아 명당의 기운을 품고 있지만 그녀의 정원은 지대 자체에 경사가 있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때문에 매일 정신없이 일만 하던 그녀의 무릎이 좋지 않은 반응을 나타냈다. “초기에 치료를 받았으면 이렇게까지 심하게 되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일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머릿속에 다음엔 뭐하고 그런 다 음 또 뭘 할지를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지팡이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심각해진 무릎을 보면서도 정원에 관한 얘기를 이어가며 즐거운 웃음을 짓는 조미정 씨. 분명 슬픈 일인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는 행복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영국 정원
이곳의 정원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영국 정원의 진수라 할 수 있 다. 이렇게 영국식 정원을 만들게 된 이유는 월간가드닝에서 진행했던 영국정원여행 때문이었다고 한다. 첼시쇼를 관람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던 그녀는 영국 정원 설계를 잘하는 임춘화 씨의 디자인 을 보고 구체적인 정원풍경을 만들게 되었는데 “임 선생님이 화이트가든, 허브가든, 플라워가든, 수국길, 중앙정원 등 패턴을 그려주셨어요. 그 느낌대로 만들었죠. 지금은 저에게 맞게 더 변형된 모습이에요. 여기에 땅 모양 생긴 그대로 나무도 적당히 선별해서 작업하시는 분들에게 요청하여 심었어요. 관목과 초화류를 심어주시는 분들이 제 생각과 일치하는 점이 많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원에 대한 어려운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시작했다는데… 그녀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눈앞에 있는 정원은 너무나 안정되고 성숙한 모습이다. 특히 지형을 잘 이용해서 패턴화시킨 것이 가장 큰 장점이 된 것 같다. 패턴만 가지고도 정원의 느낌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올해의 남은 시간은 정원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글로 정리하고 내년에 할 작업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는 조미정 씨. 하지만 지금도 매번 새 꽃을 보면 자꾸 눈이 간다고 한다. 이제는 초화 종류가 많이 커서 위치를 옮기며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데 “10년 후면 나무들이 커져서 그늘이 생길 것이니 그때는 양지식물과 음지 식물이 섞여 식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원은 계속 변할 거에요. 지금도 진행형이니까요.” 그녀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함께 생각하지만 정원의 완벽한 완성은 없을 것이라 한다. 

그녀의 영국식 포멀가든에는 7월이면 눈부신 화이트 가든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무모하다고 했던 그곳에 꿈을 세우다
온몸을 다해 식물에 집중한 만큼 조미정 씨의 정원은 3년이 아닌 8년 이상의 시간을 만들어 냈다, 마치 처음부터 이미 갖춰진 상태의 정원이었던 것처럼 꽃이며 잎이며 줄기도 굵고 크게 자라 풍성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세 살배기 정원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식물에 대해 처음부터 많이 알고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만 생활했었고, 흙을 만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정원이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라 결코 평탄할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이 사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조미정 씨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도전정신과 노력, 그리고 열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지난 이야기 속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처음 그녀가 이곳에 정원을 만든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너무 무모한 생각 아닐까?”라며 입을 모아 말렸다고 한다. 그 험하다는 지리산 자락에, 그것도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산길에 누가 봐도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땅이었다. 그렇지만 보는 눈이 달랐던 조미정 씨에겐 이곳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가장 알맞은 자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번 생각하면 꼭 이뤄내는 성격이라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지금은 동네 사람들도 이곳이 가장 좋은 위치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장애물과 싸워야 했고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조미정 씨. “처음 이곳은 측량도 하기 어려웠어요. 대나무와 복분자가 산을 덮고 있어서 동네 이장님이 하나하나 다 베어주셨죠. 워낙 황폐한 산이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길이 없어서 유실된 도로를 만드는데 많이 고생했어요. 경사가 심해 레미콘차가 3분의 1밖에 못 싣고 왔고, 큰차는 올라오지도 못해서 작은 차로 여러 번 반복해야 했어요. 게다가 포크레인도 제대로 작업이 되지 않아 삽으로 땅을 재작업을 해야 했죠. 또 축대 무너지지 말라고 심은 잔디가 화단에 들어와서 그것들을 없애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밖에 배수와 관수문제 등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이 모두가 정원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좀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식물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관리적인 부분에 집중해 책을 사서 공부하거나 꽃 동아리에 들어가서 먼저 정원을 시작한 친구들에게 도움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식물을 아는 상태가 되어 전문가한테 도움을 받고자 부산에서 주말마다 하는 수업에 참여하려고 준비 중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좋아하잖아요. 정원은 내가 내 나름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아요. 저 밑에 있는 패턴도 다 제가 그린 것이거든요. 해보니까 조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나무와 잎의 모양 등 배열을 생각하면서 색을 맞추고, 하나씩 만들어 내 는 것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이제껏 일과 집밖에 모르고 살아와서 바깥에 놀러 다닌 적도 없었어요. 그런 데 정원을 가꾸게 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여행도 다니게 되었죠. 너무 즐거워요. 특히 식물을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죠. 책을 보다 보면 새벽 2시가 넘어요. 30년을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꿈이었으니 더 그렇겠죠?”

그녀는 무릎이 상하게 되어 잠시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자신과 정원은 앞으로도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고 덧붙인다. 특히 정원의 모양이 하나하나 갖춰져 갈 때, 꽃들 이제 위치에서 제대로 자리 잡아 본인이 생각했던 분위기가 나타날 때마다 아픈것도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보이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늘 정원과 함께 느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3년의 시간 동안 또다른 꿈도 생겼다는 조미정 씨 “정원은 혼자서만 가꿀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컸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사함을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 정원문화에서 보니 오픈 가든을 해서 기부를 하던데, 저도 그런 날이 오면 좋겠어요. 여기서 조그만 것이라도 수익이 생겨 기부문화로 이끌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가는 길이 더 바빠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그녀의 좌우명처럼 그 꿈속으로 빠르게 직진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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