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원 탐방] 어느 것 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는 정원
[개인정원 탐방] 어느 것 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는 정원
  • 정경주 기자
  • 승인 2019.10.03 21:23
  • 호수 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인 정향란 씨의 ‘포근한 정원’
정향란씨의 정원
정향란씨의 정원

[월간가드닝 78호=2019년 10월] ‘마당 안으로 들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불쌍한 마음에 밥을 주기 시작하니 어느새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뜰 안을 내 집처럼 드나든다.’ 늘 넉넉한 인심으로 모두를 품어주는 정향란 씨 이야기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날, 무작정 그녀의 집을 찾아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따뜻한 밥을 지어줄 것 같은 이 사람! 유난히 넓은 그녀의 정원도 이를 아는 듯 온전하게 태양을 담아내고 있다.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해 보이는 정원. 이곳에서는 꽃뿐만 아니라 나무, 잔디, 심지어 텃밭 작물들도 빛이 난다. 정원주의 손이 얼마나 많이 갔는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잡초는커녕 마른 가지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곳곳에는 항아리와 돌, 그리고 식물과 어울려 하나의 작품이 되어버린 조형물들이 세상 편한 자세로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있다. 집집마다 정원의 형태가 다르고 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어떤 정원이 좋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딱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좋다!”

평소에 정이 많고 성격이 온화하여 찾아오는 이가 많다는 정향란 씨는 남편의 뜻에 따라 산과 물이 있어서 이곳을 선택했는데 처음부터 정원 만들 기에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원주택의 삶을 시작한 만큼 정원을 꾸며보는 게 어떠냐는 지인의 말을 듣고 식물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둘씩 만들어 가다보니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는 그녀.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의 깊이감이 묻어나는 나이지만 세월을 잊고 산다는 정향란 씨와 늦은 인연을 맺은 이곳 식물들은 단정한 맵시를 뽐내며 마치 숨겨놨던 재능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느낌대로 살려낸 감각의 공간
“처음엔 조그맣게 소일거리로 가꾸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졌죠.” 이 사람의 공간에는 소나무, 돌, 항아리, 그 외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띈다. “정원은 소나무와 돌 이 기본이라고 생각했어요. 차로 돌만 열 대가 넘게 들어오기도 했죠. 큰 돌, 작은 돌들을 식물과 함께 적절하게 배치하기도 하고, 세련된 길을 만들기도 좋았죠. 또 물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연못도 만들었어요. 사실 연못은 조그맣게 하려 했는데 마당이 워낙 넓다 보니 잘 보이지 않아 크게 만들어 재미를 늘렸어요.” 말을 듣고 눈을 돌려 둘러보니 구역마다 정원요소들이 크고 작고, 좁고 넓은 것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정향란 씨가 정원에 심어놓은 식물들은 대부분 월동에 강한 것이었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남천, 오공국화, 노루오줌 등 추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식물 위주로 무리지어 심어놓았는데, 꽃이 피지 않아도 겨울까지 생기있는 이파리를 가진 남천과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고 꽉 차서 잡초도 없는 오공국화는 특히나 주인장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또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주목나무는 담을 대신하여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정원을 거닐며 그녀는 “천일홍은 꽃이 예뻐 씨를 뿌렸는데 하나도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국화를 심었더니 길게 자라난 국화가 보라색으로 피워낸 꽃이 멋진 가을 풍경을 그려내 주었습니다. 기 분이 너무 좋았어요”라며 뿌듯해한다. 길게 늘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개나리는 동그란 모 양으로 한꺼번에 심고 다듬어 줬더니 그 자체가 커다란 꽃을 이뤘다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시 야가 잘 보이는 곳에는 꽃 종류로 심고, 큰 돌이 있는 경우에는 돌 밑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낮은 식물을 심었어요.”

그녀를 따라 잠시 주위를 돌려보았다. 홈이 파인 돌 속에서 피어난 물안개는 지나는 이에게 주는 선물인 듯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나무에 의지해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화단에는 아기자기하거나 가녀린 꽃들이 바람을 즐기는 듯 손을 흔들고 있다. 산과 이어진 또다른 연못에는 자연의 물이 그대로 떨어지고 있어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듯 가을이면 낙엽으로 인해 잠시 잊고 있던 감성이 깨어날 것 같다.

낭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정원이 처음부터 위치를 정하고 계획적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감각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꾸몄다는데…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특별한 기준은 없고 그냥 느낌대로 다니면서 그때그때 옮겨 심거나 위치를 바꿉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식물과 정원요소를 생각하면서 조화를 이루게 배치하죠. 때론 풀도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해서 어느 정도는 그대로 두고 있어요.”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다지만 감각이 뛰어난 그녀가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멀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의 손님이 되고 싶다’ 공기 좋고 조용한 이곳은 도시적인 멋을 풍기며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골집처럼 편안하고 정감있게 느껴진다. 아마도 집주인의 넉넉한 인심 때문일 것이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넓은 정원에 거리낌 없이 침범(?)한 고양이 한 마리도 정향란 씨는 그냥 보내지 않는다. 불쌍한 마음에 몇 번 밥을 주다 보니 어느새 고양이는 열 마리가 되었다는데… 그래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수를 걱정하여 직접 보건소까지 데려가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고정 멤버가 된 열 마리의 고양이는 정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다른 조형물처럼 꼼짝하지 않고 조각처럼 앉아있거나 나무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식물뿐만 아니라 집안에 들어오는 모든 생명체를 아끼고 보살피는 것이 몸에 밴 듯한 그녀. 사람을 반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리라. “서울에서 살았던 터라 여러 모임이 많았습니다. 여기로 이사 온 후에는 산 좋고 물 좋은 이 공간에서 전체 모임을 자주 가져요.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어느 누가 와도 참 좋습니다. 여기 오면 편안함을 느끼며 맘껏 휴식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죠.” 도시의 편리한 공간은 그대로 가져오고 시골의 넉넉한 인심을 담아낼 공간을 따로 만들어놓아 찾아오는 이들을 배려한 것이다. 펜션 부럽지 않은 정자는 이런 배려가 가장 잘 묻어난 곳이기도 하다.

시골에 오면 생각나는 옛 정취와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을 짓고, 화초처럼 정성스레 길러낸 텃밭의 작물들을 바로바로 채취하여 무쳐주며 기쁨을 느낀다는 그녀. 덕분에 휴식을 위해 찾아온 손님들은 밥한끼에 담긴 포근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연락 없이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는 것은 믿음직한 텃밭정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오이, 상추, 쑥갓, 부추, 참나물 등 가지런히 줄 서고 있는 채소들은 갑작스럽게 방문한 손님으로 급해진 손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문득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왜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알 것 같다. 단정하게 잘 꾸며진 풍경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정향란’이라는 사람의 포근한 마음이 좋아 정원의 모든 것들이 빛나지 않았을까. 사람이든 식물이든 기분 좋은 대접을 받았을 때, 받은 만큼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하니까 말이다. 이 좋은 공간이 앞으로 더욱 빛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