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미학] 정원의 기초
[정원미학] 정원의 기초
  • 이병철 집필위원
  • 승인 2019.10.08 21:23
  • 호수 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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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가드닝 78호=2019년10월] 멀리서 보면 산은 커다란 초록색 봉우리들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초록의 점들이 빼곡하게 모여있는 나무들임을 보게 된다. 작은 나무, 큰나무, 여러 가지 각양각색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숲을 이루고, 숲들이 모이고 이어져 큰 산이 되고, 또 그런 산들이 첩첩이 쌓여 산맥으로 이 땅의 등줄기 거대한 대륙의 근간을 이룬다. 웅장한 대자연의 위엄은 범접할 수 없는 그 두려움으로 인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그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수많은 명작들의 마르지 않는 미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아무리 이 세상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인류는 이 땅의 가장자리에 살면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목숨 걸고 올라가 간신히 깃발 하나 꽂았을 뿐 대자연은 끝없는 미지의 세계라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단지 우리는 탐험자로서 겉 껍데기만 밟고 있을 뿐이다. 

어린아이가 한걸음 한걸음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듯 정원일 역시 시작이 중요하다. 독일 하일브론 정원박람회장에서
어린아이가 한걸음 한걸음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듯 정원일 역시 시작이 중요하다. 독일 하일브론 정원박람회장에서

 

어린아이 때는 엄마의 품이 가장 안전하고 또 한없이 커보였던 것처럼, 거대하면서도 편안한 말 그대로의 대자연(Mother Nature)은 우리 삶의 근간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듯 인류는 자연을 두려워하면서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끊임없이 정복이라는 명분으로 되돌리 수 없는 수많은 상처를 남기고 부메랑처럼 그 부작용들은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고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파헤칠 것인가, 숭배할 것인가?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공존은 불가능한 것인가?” 관리될 수 있는 정복된 자연, 인간이 설계하고 계획할 수 있는 세컨네이처, 사람들은 자연(야생)과 인간(문화)이 상충하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쉽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버린다. 무자비하게 파헤치거나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인간의 간섭을 제한하거나…. 이 둘 사이의 중간지대, 즉 자연을 해치지 않고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은 『세컨 네이처』란 책에서 ‘자연(nature)’과 ‘이를 가꾸는 일(Culture)’ 사이의 중간지대가 ‘정원’으로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욕구를 채우며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해법을 찾으려면, 숲이 아니라 정원에서 가능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꽃이 만발한 아름답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공간, 최초의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출발한 Garden의 어원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인간의 땅을 밟지 않고는 살고 없는 존재,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욕구를 채우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경험하는 일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삶을 이어가는 제주도의 경관
인간의 땅을 밟지 않고는 살고 없는 존재,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욕구를 채우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경험하는 일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삶을 이어가는 제주도의 경관

정원을 생각할 때 누구든 예쁜 꽃이 만발한 이상적인 그림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의 정원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잘 자라는 화초는 죽어가고 환영하지 않는 잡초는 어느 틈에 무성해지고, 끔찍한 벌레는 초대하지 않아도 자리를 잘 잡고, 옷은 더러워지며 손과 피부는 거칠어져 식물보다 더 많은 인내심만 키우다가 결국 지쳐서 정원 일에 대해 제대로 뿌리도 내리기 전에 손을 털어버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쉽지 않게 접하게 된다. 

정원을 만드는 일은 우리들처럼 살아있는 유기체인 식물과 함께하는 과정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데는 단순히 공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라고 하는 더 중요한 가치가 있듯이, 여러 가지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이해와 견해들이 충돌하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면서 만들어가는 우리들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규격화되고 정형화할 수 있는 무생물의 재료들로 집을 짓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복합적인 요소들이 많다. 

바둑용어에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란 말이 있다. ‘대국적으로 생각하되 실행은 한수 한수에 집중함으로써 작은 성공들을 모아나가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는 말인데 어떠한 일을 할 때 큰 흐름을 먼저 읽고 우선순위를 정해 작은 것부터 구체적으로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으로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 방법이 정원 일에서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해서 심고 싶은 작은 꽃을 먼저, 그리고 채우기보다 큰 그림 거대한 대자연을 먼저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교감하면서 그 경관을 해석하면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밑그림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자는 이야기이다.

거대하면서도 편안한 말 그대로의 대자연(Mother Nature)은 우리 삶의 근간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전남 영암호 주변
거대하면서도 편안한 말 그대로의 대자연(Mother Nature)은 우리 삶의 근간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전남 영암호 주변

 

경관의 기본 요소는 가장 먼저 형태(Form)라고 할 수 있다. 형태는  어떤 사물이든 가장 먼저 다가오는 정보는 시각적인 정보를 말한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실체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특정한 모양 즉 고유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형태를 특정지어주는 요소는 선(line), 색(color), 질감(texture), 규모(scale)가 있으며, 이러한 특징들을 먼저 큰 틀에서 고민하며 계획하고 그다음에 구체적으로 하나씩 채워가면서 그리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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