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세이] 국화의 계절, 또 다른 보람이 오네요
[정원에세이] 국화의 계절, 또 다른 보람이 오네요
  • 전영호 집필위원
  • 승인 2019.09.04 21:23
  • 호수 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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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가드닝 77호=2019년 9월] “식물의 1년의 생장주기는 인간 삶의 압축과도 같습니다. 몇백 년을 산, 오래된 나무를 아래서 가만히 올려다보면 나무는 우리와 동격의 생명 개체가 아니라 그 자신 하나의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가 도도히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져가야 할 역사이고, 오히려 그 한켠에서 피고 지는 잎들이 우리와 동격인 것이지요. 가을, 물들고 가벼워지고 종내 떨어져 내리는 잎들을 보며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가을정원의 제안입니다.

 -이동협 <정원소요> 중에서-

 

9월입니다. 밤의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는 백로가 있고,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있는 달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가을의 문턱에 서 있는 달이지만, 초승에는 아직 더위가 남아 있기도 하죠. 그래도 불과 며 칠전의 여름과는 다르게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 람 때문에 ‘독서의 계절’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 달 입니다. 아마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느끼라 함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겠죠?


9월은 ‘수확의 계절’이라는 수식어도 붙습니다. 곡식이 무르익고 풍경과 날씨가 변하는, 그래서 더 기다려지는 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엊저녁에 비가 내렸나 싶을 정도로 빼곡히 맺혀 있는 이슬과 부쩍 짧아진 낮의 길이를 몸소 체감할 때에는 ‘아 올해도 벌써 다 지 나갔구나’ 하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니 2019년도 9월, 10월, 11월, 12월 4개월밖에 남지 않았네요. 봄, 여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문득 이 글을 쓰면서 달력을 보다 보니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4개월 후 면 먹기 싫어도 먹게 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어 조금 서글퍼지기 도 하는군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 중순경에는 정원 구석구석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8월의 장마가 지나간 9월의 하늘은 정말 맑고 화창합니다. 활엽수들은 단풍으로 물들기 전 은은한 가을향을 내뿜고, 여름 내내 무성하게 자랐던 잔디들은 그 기세가 한풀 꺾입니다. 큰 교목들 이 바람에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흔들려 내는 소리는 웅장하기까지 합니 다. 그동안 형형색색의 색깔들로 빛을 발하던 꽃들은 꽃의 주인공자리 를 국화로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하죠.


화단에는 흔히 ‘가든멈’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농구공 모양으로 재배한 국화들이 빼곡하게 들어섭니다. 그런데 이 ‘가든멈’이라고 불리는 국화 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 뜻이 나오질 않습니다.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원(Garden)에서 사용하는 국화(Chrysanthemum)라는 뜻에서 앞글자와 끝글자를 따 ‘가든멈’이라고 부르는 것이라 추측할 뿐이죠. 가든멈 말고도 작은 화분에 심은 국화 포트멈(pot-mum), 절화 로 사용되는 국화(cut-mum) 등이 있죠.


저희는 그 중에서도 ‘가든멈’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올록볼록 예쁘게 심겨진 가든멈은 정원을 찾는 손님들에게 흥미로운 소재 중 하나입 니다. 보통 ‘어떻게 저렇게 동글동글하게 자랐을까?’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데 매년 심는 가든멈이지만 저도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이 사 실입니다. 화분의 크기 자체가 크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 심는 식물들보 다 그 수고(?)가 덜하기도 하지요. 큼직큼직한 화분 몇 개만 갖다 놓아도 화단 하나가 채워지니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쉽게 해결되기만 한다면 정원 일이 아니죠. 평소에 물주는 시간과 그에 들어가는 인력을 아끼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이용하는데 가든멈에는 스프링클러를 이용하여 물을 줄 수가 없습니다. 화분 속에 가득 물을 채워줘야 해서 일일이 호스로 물을 주게 됩니다.


가든멈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점적관수 시설을 설치하여 비교적 편하게 물을 주지만 정원에서는 여러 여건을 고려하였을 때 그러한 시설 을 설치하기 어려워 시간이 걸리더라도 손으로 물을 주게 되죠. 그러다 보면 가끔 재미있는 광경도 연출이 되게 됩니다. 한 명이 손이 닿지 않 는 곳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화단 으로 들어가면, 다른 한 명은 그 뒤에서 호스에 꽃이 망가지지 않게 잡고 있습니다. 편히 서 있는 자세가 아닌 관계로 행여나 넘어질까 노심초사 하게 되고, 가끔은 호스를 놓쳐 물벼락을 맞기도 하죠.


한번은 둘이서 4천 여 개의 가든멈에 물을 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쉬지 않고 줬는데 꼬박 7시간이 걸리더군요. 주는 내내 여러 손님이랑 이 런저런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물만 주기도 했는데 지나고 나니까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물주는 일은 정원일 중 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소홀히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물주는데에만 3년이 걸린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죠. 그렇게 물주는 일이 끝나고 나서 정원을 돌아보면 실제로 꽃이 실제로 생기있게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예전엔 하루 온 나절을 다 보내고서도 끝마치지 못했던 일을 요즘엔 빠르면 반나절, 늦어도 오후 3시경까지는 끝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팀원들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이 작업을 이틀 동안 했는데..’, ‘하루 동안 잡은 일이 벌써 끝났다고?’ 하면서 말이죠. 어쩌다 휴가를 보내고 온 팀원이 작업을 계획했던 장소에 가보고 그 일이 이미 끝났을 때에는 ‘이걸 하루 만에 다했어요?’ 라고 놀라기도 합니다. 일을 함께하는 팀원들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작업이 몸에 익었다는 것이겠죠. 새삼 어느 일이든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 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목표로 정한 일을 모두 끝냈다고 마냥 쉴 수만은 없습니다. 매년 경험이 쌓이고 일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주위를 둘러보면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여태껏 신경 쓰지 않았던 곳이 눈에 들어오고 관심 있게 지켜본 곳은 더 아름답게 만들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정말 ‘뫼비우스의 띠’처럼 일의 삼매경에 빠지게 됩니다. 정원 일이라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수학처럼 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일하는 개개인의 성향과 만족도로 일의 끝맺음을 정의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준비한 대로,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정원이 연 출이 되면 힘들게 일한 보람과 함께 비로소 ‘일이 끝났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함께 동고동락하며 힘든 일을 끝마친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지겠죠. 물론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과정과 그 경험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을 되뇌었을 때, 그때는 그 시간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 즐거운 추억들을 꺼내본다면 지친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그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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