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세이] 되찾은 그녀
[정원에세이] 되찾은 그녀
  • 김청 수필가
  • 승인 2019.10.0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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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가드닝 78호=2019년 10월] 토요일 오후이다. 밀린 일을 조금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사무실로 나섰다. 지하철을 타려는 남부터미널 승강장에는 일본인, 중국인 등 외국인 여행객도 더러 보였다. 그들의 담소를 쳐다보면서 평소에 애용하던 승강위치로 걸어갔다. 누군가가 시간에 쫓기는 듯 나를 세게 밀쳤다. 내 몸 전체가 휘둘릴 정도였다. 바쁜 모양이구나 생각하며 조금 걷다가 양복 안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지갑이 없었다. 오던 방향으로 뒤돌아 뛰어 가보았지만 그럴만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를 밀친 그 사람이 틀림없었다, 순간이어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소매치기일까 생각하다가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지금 시대에 좀 도둑인 소매치기가 이런 곳에서 자행될 수 있을까? 나는 반문해 보았다. 날씨가 약간 싸늘하기에 며칠 전부터 상의를 입었다. 하지만 분명 지갑이 왼쪽 안주머니에 있었다. 그러나 혹시 정신없어 지갑을 사무실이나 집에 두고 나왔을 수도 있으리라며 지하철을 탔다. 정말 소매치기꾼의 소행일까 반신반의하며 생각에 잠겼다.

결혼 때의 일이었다. 나는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지으시는 어머니에게 결혼비용을 드리 고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하루가 넘게 걸려야 했던 시골길이었다, 고향집에 도착하여 주름살로 얼룩진 어머니와 반가이 인사 나누었다. 그런 데 양복 안주머니에 있던 돈 봉투를 내어 드리려는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먼 길이었기에 혹시나 하여 단추도 잘 잠갔는데 어찌된 일인가. 이곳저곳 살펴봤더니 안 주머니 밑이 칼자국으로 찢겨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망연자실하며 안타까워하는 나를 어머니가 오히려 위로해주시며 아버지에 관한 옛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일본 유학 때 할아버지가 보내준 돈을 동경 시내버스 간에서 소매치기 당했다는 것이었다. 하숙비와 책값으로 계획했던 돈을 소매치기 당했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분했을까! 게다가 시골에서 고생하여 어렵게 마련해 보내준 돈인데. 아버지는 신문지를 모아 지폐의 크기로 자른 후 봉투에 넣고 돈뭉치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양복 안주머 니에 넣어 버스를 타고 시내 이리저리로 다녔다. 소매치기꾼을 잡아보겠다며 며칠이고 계속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소매치기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결국 소매치기꾼은 잡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말도 하지 못하고 푸념만하며 한동안 고생을 했다는 이야 기였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 주변, 옷장 주변을 이리저리 뒤져봤지만 지갑은 나타나지 않았 다. 건망증이 있어 잊어버리기 일쑤인지라 집에서 찾아봐야겠다고 기대를 접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구석구석 밤늦도록 청소하듯 살피며 아무리 뒤져봐도 지갑은 없었다.

다음날이었다. 정말 소매치기를 당한 것일까? 카드 분실 신고는 했지만 지갑 속에 넣어 다니던 사진이 아까웠다. 아내의 고등학교 시절 앳된 소녀상이 담겨있었다. 돈을 빼내어 가져가더라도 나머지는 돌려주면 좋겠다고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지하철 역무실의 시시티브이를 확인해 보겠다고 갔지만 역무실에서는 경찰에 신고해야 가능하다고 하여 오후에야 경찰관과 함께 영상을 돌려보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 몸이 휘돌린 그 장소는 시시티브이의 사각지대였다. 하얀 모자를 쓴 나의 모습이 조금 보이는 그것뿐이었다. 대신 그 위치에서 상황을 스스로 실행해 보여줬지만 경찰관은 소매치기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집이나 어디 다른 곳에서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투였다. 소매치기의 경우는 돈을 빼고도 지갑은 돌아올 확률이 적고, 분실했을 때는 유실물센터 등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고 말했다. 나는 소매치기가 아니라 분실이었으면 싶었다.

셋째 날이었다. 지난 밤 꿈속에서 혹시 알게 해 주려나 기대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 다. 이럴 때 꿈속에서라도 비춰주면 얼마나 좋을까!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바쁘게만 살아온 아쉽고 바보스러웠던 지난 생활들을 더듬어보았다. 우울해지는 자화상으로 자책의 시간을 보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까. 그래! 포기하고 잊어버리자! 아내 의 사진이 아깝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잖은가! 하고 체념을 했다. 사무실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지갑을 잃어버렸죠? 돈은 들어있지 않지만 다른 것은 다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분이 이 근처에서 주웠다고 가져왔으니 오셔서 확인하고 찾아 가십시오. 신촌역 앞 경찰지구대란다. 지갑 속에 명함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바로 달려갔다. 이대역에서 내렸다. 와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곳이기에 소매치기꾼 덕택에 유명한 이대거리를 아주 오랜만에 구경하게 되었구나 싶었다. 가슴 두근거리던 동네, 학창시절의 ‘이대 앞’을 추억했지만 아카데믹 하지 않았다. 구두, 옷 가게며 장식품, 고급 의상실, 화장품, 페이스 샵 등 호화찬란한 쇼핑센터로 변모해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 는 지갑 때문에 살펴볼 겨를 없이 신촌역 쪽으로 내달렸다.

지구대라지만 옛 파출소였다. 잃어버렸던 지갑을 다시 만났다. 손으로 쓰다듬고 껴안아 줬다. 지갑을 펼치자마자 잔잔한 기쁨의 미소로 걱정 많이 했지요 하며 소녀 아내가 빙 그레 웃고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밤을 지새웠음이 분명했다. 많지 않은 돈이야 없어졌지만 사진이랑 카드와 다른 것은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었다. 애를 태웠지만 다시 만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서는 문 앞으로 둥근 해가 저녁노을에 물들어 벌그스름하고 커다랗게 비쳐왔다. 붉은 해가 아직 서산을 넘지 않고 연세대 앞쪽 창천교회 종탑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잔약한 길을 조금이라도 더 비춰주겠다는 듯. 어쩌면 내가 찾으려는 건 지갑이 아니라 그 소녀였음을 어렴풋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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