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권용택·이향재 부부_화가의 정원
평창 권용택·이향재 부부_화가의 정원
  • 정경주 기자
  • 승인 2019.11.01 13:02
  • 호수 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풀’이라 했는가. 나에겐 ‘꽃’이다

[월간가드닝 79호=2019년11월] ‘예술가의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미리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범상치 않은 화가의 삶이 그려져 있음에 어쩔 수 없이 예술의 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 바위에 생기를 채워 놓은 꽃들… 야생화라 그럴까? 꽃 자체만의 강렬함으로 바탕을 죽이는 그림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처럼 아름다움이 자체가 새겨져 있다. 자연이 스며든 이 공간에 20년 동안 ‘야생화 세상’을 만들어낸 주인공 권용택·이향재 씨를 만나보았다.

 

주인장 권용택 씨는 꽤나 유명한 화가다. 197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많은 개인전을 열었으며, 총 300회가 넘는 그룹 및 기획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는 지금 강원도 평창군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에 주목하고, 그 모습들을 기록해나가는 중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인 아내 이향재 씨와 함께이기에 더 든든하다. 그녀 역시 화가다. 바위에 꽃을 입혀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곳은 면적상으로는 1700평인데 국유지 포함 2000평 정도죠. 처음부터 정원개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1992에는 들꽃그림으로, 1998년에는 물에 대한 주제로 개인전을 했었는데 들꽃과 물, 모두 자연 속 인간의 삶을 역사적으로 표현하거나 사회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도시에서 관람하는 자의 입장으로 섰을 때는 그림에 진실성을 담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그런 삶 속으로 들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주제를 가지고 그린다는 권용택 씨는 여성을 소재로 한다면 가정법률상담소에 가서 회원이 되어 자원봉사를 해보고, 환경운동에 관한 것이라면 환경운동 회원뿐만 아니라 운영위원으로도 1년 이상 같이 경험하면서 직접 느낀 것을 화폭에 담는다고 한다. 어쩌면 지나치게 정직하다 할 수도 있는 이 사람의 생각은 여기 있는 야생화 세상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식물들이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직접 느끼면서 그들의 생각대로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다른 정원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이곳 야생화들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 미리 정한 곳에 씨를 뿌리며 같은 곳에 모여 있게 해도 각자 바람을 타고 예상치 않은 곳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적당한 자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심어 놓아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무심코 지나는 발걸음을 잡아 세울 정도로 눈에 띄게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들꽃도 있다. 할미꽃과 매발톱이다. 인간의 공간에 자연이 들어선 것인지, 자연의 삶에 인간이 문을 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과 인간 모두가 원하는 삶을 직접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야생화 세상’ 2000평 공간에 펼쳐지다

생태를 생리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를 유지하는 이들 부부를 남들은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크고 진한 꽃을 좋아하죠. 반듯하게 정돈된 정원에 시선이 머물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처럼 꽃 자체가 조그맣고, 눈에 띄지 않게 흩어져 정리되지 않은 것은 싫어해요. 어쩌면 그들에게 야생화는 꽃이 아닌 풀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멸종위기의 식물들을 도심 정원이 아닌 자연 조건에서 관리하는 이곳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며 이향재 씨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때로는 돈이 되는 생산적인 것을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는데… “저희에게는 이게 생산적인 일입니다. 경제적 가치로는 부족하지만 야생화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받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제초제 한번 쓰지 않았어요. 직접 풀을 뽑고, 인위적으로 꽃을 몰지도 않죠. 식물 스스로가 번지면 번지게 놔두고, 잘 되지 않으면 그마저도 그대로 둡니다. 그러다보니 이곳에 맞는 것만 남게 되었어요. 시작할 때는 여러 종류를 많이 하는 것을 원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되고 안 되고를 알아요. 내려놓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남편의 생각과 많이 닮아있었다.

이들은 오대산과 가리왕산,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백석산에 있는 식물들을 20년 동안 여기 2000평 공간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식생조사를 하니 약 400여 종이 된다고 한다. 강아지풀과 쑥만 들어오지 못하게 제거한다. 나머지는 하나하나가 꼭 있어야 할 보존 가치가 있는 꽃이다.

최대한 식생 식물을 옮기려 노력했다는 권용택 씨. “강아지풀도 식생 경계선 밖에는 존재하도록 놔둡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었어요. 음지와 양지, 반음지의 3가지 조건이 다 갖춰져 있는 이곳은 최대한 자연조건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했죠. 나무도 베지 않고 놔두니 자연 씨가 날아다니면서 스스로 터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옮겨온 나무는 몇 종 되지 않아요.” 그는 국립공원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받아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산을 돌며 멸종 위기에 있는 귀한 야생화를 옮겨 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오대산 높은 봉우리에 있는 더없이 귀하다는 ‘금강초롱’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힘든 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내가 관리하는데 1년에 4차례 정도 풀정리를 한다고 한다.

 

 

작품보다 더 작품 같은 부부의 삶

이곳 야생화의 공간은 대부분 경사가 있어 거의 산이라 볼 수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산자락에는 온갖 들꽃들이 큰숨으로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 자연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층층 쌓인 바위, 산 위에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곡물소리가 자연을 느끼는 야생화들의 만족감을 더해준다. 부부는 이전에 도시인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일일이 들꽃 하나하나에 인사를 건네고, 어제와 다른 꽃들이 핀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시골로 내려가자 했을 때 이 사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요. 어릴 때, 자연 생활을 했던 이유 때문일 거예요. 아내는 계절마다 피는 야생화를 그림으로 옮겨 심습니다. 저는 자연을 역사문제와 연관시켜 시사적인 그림을 그리는 편이고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식물에 대한 감성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세상과 떨어진 산 깊숙한 곳에 천국을 만들어 놓고 매시간을 감동으로 채워나가는 부부의 삶이 그들의 작품보다도 더 작품처럼 느껴진다.

복수초, 깽깽이풀, 바람꽃, 미치광이풀, 삼지구엽초, 복주머니난, 말나리 하늘나리 솔나리 등 나리종류, 촛대승마, 한계령풀, 족도리풀, 으아리, 왜솜다리, 용담, 물매화, 마타리, 둥근이질풀, 용머리, 꿀풀, 절굿대, 꽃범의꼬리, 원추리… 모두 자연에서 우연히 이곳에 놀러왔다가 그대로 뿌리를 내린 꽃들이다.

“하나씩 꽃이 필 때마다 저희만 서로 좋아하죠. 작은 것에 만족하고 미치기 때문에 행복한 날이 더 많습니다. 그냥 우리 멋에 사는 거죠. 야생화 하나하나를 발견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들꽃과의 만남은 산삼을 만난 것처럼 항상 설렘을 줍니다.”

처음엔 취잎도 몰랐다는 그녀는 설렘을 이 공간에 심어놓으며 사계절 경험을 통해 식물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 비해 식물들이 유난히 크게 자란다고 하며 이유를 모르겠다는데…

문득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발돋움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야생화들을 상상해 본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예고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식물들. 언제 어디서 피어나도 부부는 자신을 찾아와 손을 흔들어 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힘을 주어 발돋움을 하면 환하게 웃는 부부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으리라. 이때 지난 밤 힘겹게 꽃을 피워낸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내며 새로운 삶을 준비해 나가는 그들만의 법칙이 빛을 발하지 않을까.

처음 보는 식물이 많았음에도 유난히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 크게 자라서 더 예쁜 이유다.

 

글 정경주 기자 사진 장현숙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