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최시영 건축가/공간디자이너
[사람들] 최시영 건축가/공간디자이너
  • 장현숙 기자
  • 승인 2019.11.02 14:16
  • 호수 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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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밭농사는 숨고르며 천천히 가는 삶
최시영 건축가/공간디자이너

[월간가드닝 79호=2019년11월] 시시각각 힘겹고 지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걸음마다 다리가 팍팍할때 위로가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주상복합 아파트 신드롬 선도자로 타워팰리스와 같은 당대 가장 트렌디한 건축물을 설계하며 최고의 건축가로, 최고의 공간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던 최시영 대표. 그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브런치카페 ‘세상의 모든 아침’과 경기도 광주의 ‘파머스 대디’, 경기도 이천에 ‘에덴파라이드 호텔’과 ‘에덱낙원’을 조성하면서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밭’을 디자인하고 정원을 가꾸는 ‘농사짓는 건축가’. 그의 정원철학을 만나본다.

오랜 길을 달려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팔당호의 완만한 풍광을 곁에끼고 경기도 광주시 남사면 쪽으로 10여분을 달려가면 산자락에 안겨 완연하게 가을이 내려앉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 ‘파머스 대디’를 만난다. 공간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유명한 최시영 대표의 정원놀이터다.

천천히 가기로 했다

오랫동안 세상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일에 익숙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날들, 최고의 명성으로 업계를 선도하니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가 밀려왔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아무리 달려도 끝나지 않을 길, 오랜세월 너무 급한 속도로 달려온 탓에 그는 완전 맨붕이 올만큼 너무 지쳐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탓일까? 사색하고 치유하며 스스로를 살피고,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받을 나만의 공간으로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불현듯 어릴적 아버지가 가축을 키우던 경기도 광주 목장 땅이 뇌리를 스쳤고, 어느새 차는 그곳에 가 있었다. 잊고 있었던 땅, 그 땅에 발을 내딛자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듯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사람 키만한 풀숲에서 같이 간 직원과 함께 정신없이 낫을 휘둘렀고 드러나는 땅의 속살에 가슴은 뭉클거렸다.

그 뒤로 8년동안 매주 경기도 광주 땅을 오가며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씨를 뿌려 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않은 ‘기다림’이었다. 오늘 심고 내일 꽃을 피워주면 좋으련만 자연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봄이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겨울이 오듯 자연은 기다리면 자기만의 속도로 찾아와 주었다.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와 주는 자연에 한 해 두 해 순응하다보니 그도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빠르게 지나온 삶의 속도. 자연에 맞춰 이제, 천천히 가기로 했다.

무표정의 밭에 생명력을!

땅은 아는 게 없었다. 서점을 뒤져가며 책으로 배우고, 동네 어르신께 물어봤다. 그러다가 비료나 퇴비를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경작하는 송광일 박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땅도 사람도 스스로의 힘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이치를 배우고 깨달았다. 비료도 퇴비도 없으면 식물은 스스로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잔뿌리를 많이 만들고 멀리 뻗으며 세포조직은 치밀해지고 탄탄해져 잘 썩지도 않고 병해충에도 강하다. 하지만 비료나 퇴비를 준 식물은 키는 쑥쑥 자라지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으니 세포조직은 느슨해지고 병충해에도 약하다는 원리다.

 

 

 

 

 

 

 

 

 

 

 

 

자연재배의 원리와 함께 커피가루와 신문지 멀칭 등은 땅을 이롭게 한다. 유럽텃밭에서 배운 데로 밭을 갈아 엎지 않고 30cm의 토양에서 작물을 키운다. 텃밭의 작물들은 때로는 탐스럽고, 때로는 벌레와 공생하여 잎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한 땅의 작물들이니 마음놓고 먹을 수 있어 좋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데다 일때문에 외국을 많이 다녔다. 공간디자이너다보니 어디든 공간구성에 대한 것들을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농사를 짓다보니 이제는 여행을 해도 보이는 것마다 다 ‘텃밭’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외국은 ‘밭’의 형태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나라 모든 작물의 비닐하우스는 약속이나 한 듯 죄다 쇠파이프를 동그렇게 구부려 만든 아치 형태였다. 마치 나라에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법이라도 정했나 싶을 정도로 비닐하우스 형태가 똑같았다. 반면 외국은 그라스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고 디자인도 너무 예쁘고 다양했다.

그래서 밭을 디자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무표정한 밭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자! 밭과 정원의 아름다운 조화! 그렇게 ‘파머스대디’는 공간디자이너인 최시영 대표가 8년동안 ‘정원과 밭’을 자연의 흐름에 맞는 아름다움으로 연출하고자 끊임없이 연습한 공간이 되었다. 똑같은 표정의 비닐하우스, 겨울철 삭막한 들판 등 더이상 운치를 느낄 수 없었던 밭이 치유와 힐링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밭도 예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파머스대디를 통해 먹음직스러운 작물들과 그 사이에 핀 꽃, 사이사이에 배치된 오브제로 밭은 아름다웠다. 또 텃밭과 함께 만든 온실은 사계절 초록으로 빛났고 조화롭고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주고 살았던 삶! 이제 삶에 지쳐 쉬고 싶은 이들의 대변인이 되어, 내가 자연에서 느낀 치유와 힐링으로 보답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부터 그는 주거공간이든 상업공간이든 모든 프로젝트에 ‘그린’과 ‘가든’을 넣기 시작했다.

또한, 공간디자이너답게 외부 공간들이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담도록 설계했다. 오늘은 결혼식장이었던 곳이 내일은 파티장으로, 소공연장으로 변하며 정원과 밭은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정원에 심었던 꽃들과 공간들을 생각하며 향수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파머스대디의 밭과 정원들이 런웨이장이 되는 패션쇼를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고 지며 자연이 스스로 땅의 공간을 연출한다면 그 공간을 활용하고 변신시키는 건 공간디자이너인 그의 몫이다.

최시영 대표가 설계하고 조성한 에덴파라다이스 호텔은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 50분 안쪽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경기도 이천 도드람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숙박시설 못지않게 1만㎡의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숙박뿐만 아니라 정원을 산책하며 차를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즐기기에 좋은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자연 속에서 쉼과 회복을 주고, 섬세하게 꾸며진 3,500평의 테마 가든은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선물 받은 느낌이라고 할 만큼 마음의 안식을 준다. 스페인풍의 건축양식과 감성적 인테리어, 직접 가꾼 제철 식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요리를 고급스런 레스토랑, 알렉스 커피, 꽃과 식물이 가득한 커다란 온실 카페 ‘티하우스 에덴’ 등 조용히 쉼을 하기에 적당한 곳들이 많다.

전체적인 컨셉은 유럽의 포멀가든으로 설계했다. 회양목으로 테두리를 장식하고 갖가지 그라스와 유럽수국, 계절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나도록 하고 호텔의 한 가운데를 축으로 길게 뻗은 수로에는 항상 물이 흘러 생동감이 넘치도록 했다.

정원은 테마별로 구성되어 있다. 최시영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밭’의 개념을 정원에 도입시켰다. 블루베리와 블랙베리가 익어가는 베리밭은 규칙적인 시설물로 리듬감있는 정원으로, 몸에 좋은 허브식물이 풍성하게 심겨 있는 허브밭은 힐링정원으로 조성했다. 가지, 토마토, 바질, 상추 등 신선한 식재료로 가득한 키친가든은 레스토랑과 가까이 있어 요리사가 직접 정원을 관리한다.

흰색이나 은색의 꽃과 잎이 주가 되어 만들어진 은빛정원은 고급스런 화이트가든으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사색의 정원은 서양측백나무 울타리로 둘러쌓여 있다. 대왕참나무를 이용하여 가지를 옆으로 유인작업을 하여 생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에스팔리어 정원은 야간에 조명이 켜지면 더욱 감성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원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엔젤하우스, 문하우스 등의 쉼터는 낭만적인 추억을 만들기에 좋은 장소다. 정원을 거니는 동안 동선마다 다양한 바닥재를 사용해 바닥재만 사진을 찍어보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대표 수종

측백나무, 수양버드나무, 산딸나무, 꽃댕강나무, 산사나무, 블루엔젤, 스트로브잣나무, 블루베리, 메타세콰이어, 대왕참나무, 유럽목수국, 회양목, 그라스

자연은 한결같다. 최시영 대표가 자연에서 힐링하고 자연에서 기다림을 배웠던 공간이 파머스대디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농사를 짓고,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꽃의 생리를 익히고, 찾는 이들에게 정원 곳곳을 누비며 척척 정원해설을 한다.
천장이 뾰족한 박공 지붕의 그린하우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입장료 8천원에 커피 음료값이 포함되어 있어 커피를 한잔 받아들고 정원을 거닐면 된다.

수로 앞에는 키 큰 보라색 마편초가 넘실넘실거리며 피어있다. 한 가운데로 길게 뻗은 수로 양 옆에는 봄날을 눈부시게 했을 매화나무가 열식되어 있고, 블루베리와 텃밭 작물 사이에는 허리가 넘는 키의 바늘꽃이 흐드러져 있다. 두메부추와 파꽃, 알타리 무와 배추 사이사이에 가을 추명국과 아스타가 가을 색을 뽐내고, 호박꽃은 넝쿨을 타고 오른다. 그야말로 꽃과 작물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밭’이다.
쑥부쟁이와 원평소국 길을 지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풍성한 수국 둘레길과 떡갈잎 수국이 자태를 뽐낸다. 또 핑크뮬리와 그라스가 한창인 바람정원은 깊어가고 있는 가을정원에 제대로 색감을 더한다.

산자락 주변의 은행나무 둘레길에는 오래전부터 밤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등이 자리하고 있다. 데크로 만든 큰 쉼터를 지나 ‘화이트 앤 실버길’에는 하얀색 계열의 꽃들이 피고 진다.

하늘정원의 너른 잔디밭에는 하늘이 담긴 물 속을 바라보라고 등이 높은 의자가 놓여있다. 그러고보니 보이는 곳마다 때로는 홀로 앉을 1인용 의자가, 때로는 2인용 의자가 놓여 있다. 이용객들이 아름다운 가을정원을 놓치지 말고 앉아서 사색하기를 바라는 최대표의 바람이다.

제대로 식물을 돋보이게 하고 공간에서 느끼는 감성들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정원 곳곳에는 식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소재들의 오브제 시설물을 만들었다. 직접 식물을 심거나 분갈이를 할 수 있는 작업대와 화분을 판매하는 마켓플레이스도 마련되어 있다.

어쩌면 보여주기 부끄러운 연습장 같은 곳. 음지식물을 땡볕 내리쬐는 곳에 심기도 했고, 이유없이 죽어가는 식물들과도 숱한 이별을 했던 곳. 한 줌의 건강한 흙들이 기반이 되어 자리를 잡으며 주변풍경과 어우러져 가는 파머스대디는 이 가을, 천천히 가는 삶, 사색하며 치유받는 삶을 전한다.

주요식물

매화나무, 유럽목수국, 떡갈잎수룩, 블루베리, 핑크뮬리, 아스타, 용담, 찔레장미 등

장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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