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닮은 밭, 키친가든
숲을 닮은 밭, 키친가든
  • 이진호 집필위원
  • 승인 2020.02.13 11:30
  • 호수 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퍼머컬처 _ 정원(Garden)과 농장(Farm)의 경계를 허물다 ②

 

[월간가드닝 82호=2020년 2월] 숲의 비밀에서 배우는 두 가지 지혜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자. 오래된 숲은 사람이 돌보지 않아도 울창하고 푸르다. 심지어 빛이 들지 않는 큰나무 밑에도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작은 식물들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생태학자들은 여기에 의문을 갖고 연구를 해오며 숲의 비밀을 밝혀냈다. 숲도 처음에는 허허벌판이었다. 풀씨가 날아와 자라나 수풀을 이루고 사이사이 작은 나무가 자리를 잡으며 서로 경쟁을 한다. 여러해살이인 나무가 해를 거듭하며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덩치를 키우니 한해살이풀들은 그늘 밑 신세로 전락하다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하지만 그늘 밑에서 잘 자라는 음지성 풀은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여 풀과의 경쟁 속에서 승리하게 된다. 
나무끼리의 경쟁도 볼만하다. 처음에는 빛을 좋아하는 키 작은 관목이 우세하다 빨리 자라는 나무에 밀려나고 마지막으로 천천히 자라지만 오래 사는 나무가 숲의 최종 승자가 된다.
숲이 안정된 상태에 도달하면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긴 시간을 이어갈 수 있다. 이것이 천년의 숲이다. 이를 ‘천이(遷移)’라고 하는데 사전을 펼치면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라 설명한다. 숲을 잘 관찰해보면 키 큰 교목, 중간 교목, 키 작은 관목, 수풀, 덩굴, 지피식물, 땅속식물, 수생식물, 심지어 버섯 같은 균류까지 모두 아홉가지 층들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방해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숲의 비밀 중 중요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첫 번째는 ‘시간이 흐르면 허허벌판에서 숲으로 변해가는구나’ 이고 두 번째는 ‘숲을 이루는 식물들은 긴 시간을 통해 그 자리에 잘 적응하는 종들만 살아남았구나’ 이다. 
‘숲을 닮은 밭’이 바로 키친가든이다. 우리는 숲의 비밀 두 가지로부터 키친가든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제초작업, 경운 등 식물 가꾸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으려면 불안정한 잔디밭이 아니라 안정된 숲의 단계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농약, 비료, 거름 등을 투입하지 않으려면 숲속처럼 다양한 식물들에게 각자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서로 더불어 살도록 관계를 꾸며줘야 한다는 점이다. 내 정원이 숲을 닮도록 키친가든을 가꿔 보면 어떨까? 

키친가든 만들기 1. 공생을 위한 동반자 관계 맺어주기 

식물 간 상생과 공생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로 동반자 관계(Compa-nion)를 맺어주어야 한다. 좋은 친구나 부부, 형제들처럼 서로 도움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 예로는 영국의 키친가든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토마토와 바질의 궁합이다. 토마토와 바질은 같은 가지과 식물로 함께 자라면서 제각기 땅속에 다양하고 풍부한 미생물을 불러들여 서로 맛을 좋게 하고 바질은 토마토의 온실가루이병을 막아준다. 
영국 토트네스의 ‘팍스홀 커뮤니티 가든’(Foxhole community garden)을 가보니 재미 있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한 라인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비닐 멀칭 위에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었고 바로 옆에서는 비닐 멀칭을 걷어 내고 바질과 함께 토마토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토마토와 바질이 함께 자라는 곳의 토마토가 더 푸르고 잎과 열매가 무성했다. 바로 옆에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스쿨팜(School farm) 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이곳을 공생과 상생의 학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토마토와 바질은 자라면서 성장과 맛을 높이기 위해 서로 도움을 주지만 더 놀라운 것은 죽어서도 서로 깊은 우애(?)를 기린다는 것이다. 푹 익은 토마토스파케티 옆에 싱싱한 바질잎들이 나란히 놓여 미각과 향미를 돋울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보색으로 어우러진다. 

키친가든 만들기 2. 동반자 관계들을 모아 군락(Guild) 이루기 

좋은 친구 관계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이루듯 식물계에서도 좋은 동반자(Companion) 관계들이 모이면 하나의 건강한 미니 숲을 이룰 수 있다. 사회에서 질서가 있다면 건강한 숲에서는 군락(Guild)이라는 집합체가 있다. 
작지만 강한 군락(Guild)관계로 ‘옥수수 세자매’를 예로 들어 보자. 아주 오래전 멕시코 의 원주민들은 옥수수와 함께 콩과 호박을 같이 심었다고 한다. 이 ‘옥수수 세자매’ 농법을 통해 식물들이 어떻게 서로 도움을 주며 자라나는지 알고 나니 2천년 전 인디언 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수수 줄기는 자라면서 콩이 타고 올라갈 지주대 역할을 해주고 콩 뿌리에 서식하는 질 소고정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는 당분을 제공해 준다. 호박은 넓은 잎으로 포복해가면서 퍼지는데 땅에 그늘을 만들어 주어 수분의 증발을 막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햇빛을 차 단해주는 살아있는 토양 피복재(멀칭)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은 이에 질세라 고마운 옥수수와 호박에게 양분을 제공해 준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옥수수와 비타민이 풍부한 호박은 열매가 크면서 많은 양분을 필요로 한다. 이때 콩은 질소고정(Nitrogen fixation) 이라는 작업을 하는데, 공기 중에 78%나 있는 질소를 이용해 리조비움(Rhizobium)이라 는 박테리아와 함께 식물성장에 가장 중요한 질소를 포함한 여러 양분을 땅속에 만들어 낸다. 콩 뿌리를 캐내 보면 동글동글한 알맹이를 볼 수 있는데 이 질소 덩어리인 뿌리혹 으로 옥수수와 호박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도록 하려면 먼저 이른 봄에 얼지 않을 날씨가 되면 옥수수를 1미터 간격으로 2~3알씩 심는다. 옥수수 라인은 남북방향으로 맞춰 나중에 밭에 그늘지지 않도록 한다. 이후 옥수수가 싹을 터 15cm 자랐다 싶으면 사방으로 한 뼘 정도 거리에 덩굴성 콩을 하나씩 심는다. 마지막으로 일주일 지나 옥수수들 중간지점에 1m 간격으로 호박씨를 3개씩 심으면 끝난다.
올봄이 오면 내 밭 한구석에 옥수수 세자매 길드를 만들어 그들 셋이 똘똘 뭉치게 해보면 어떨까? 나는 팔짱 끼고 지켜보다 때 되면 수확의 기쁨을 맛보면 그만이다.

키친가든의 즐거움 – 텃밭에서 우아하게 가드닝하자

필자는 강원도 정선의 50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이곳 근처의 유일한 의원에는 허리와 관절을 물리치료 받기 위해 동네 어르신들로 붐빈다. 그들 대부분은 평생 밭일로 햇빛에 그을리고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에 허리가 구부정한 채 잘 걷지도 못하신다. 들판에 나가보면 밭에서 한나절을 뙤약볕을 맞으며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서 채소를 가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식 농사를 위해 이 고통을 마다 않는 우리 어머님들이시다.
영국 키친가든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그들이 게을러서인가? 기계로 밭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밭에서 고생스런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은 뭔가 다른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애플체인은 그 방식을 따라 작년 3월부터 서양식 자연재배인 퍼머컬처에 기반한 한국형 키친가든을 조성했다. 두둑을 높이 쌓고 식물간 동반자 관계를 맺어주고 서로 어울리게 길드를 만들었다. 참고 사진은 7월말경 긴 비바람이 그치자 궁금해 몇일만에 찾아가 밭을 돌보는 전경이다. 우리 직원이 전정가위를 들고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뒷짐지며 거닐다 군데 군데 살피는 모습이 관행농사의 밭일보다는 정원에서의 가드닝에 더 가깝다.
두둑 맨 위에는 사과와 보리수, 배를 번갈아 심었다. 나무들 바로 아래는 덩굴콩을, 두둑 위 라인에는 토마토를 심고 주변에 바질을 심어 토마토가 건강하고 맛있게 자라게 했다. 토마토 사이 사이에는 케일을 심어 토마토 줄기가 커다란 케일잎을 의지하여 쓰러지지 않게 해서 토마토 열매가 땅에 닿지 않도록 했다. 그 아래 줄에는 메리골드와 그 다음은 로메인상추와 치커리를 연속해 심었다. 상추와 치커리 그리고 메리골드는 제각기 다양한 병해충을 몰아내 토마토와 케일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준다. 그다음에는 한련화를 심었는데 한련화는 병해충을 몰아낼 뿐만 아니라 땅을 기름지게하는 질소고정 역할을 하고 크고 둥근 잎을 호박잎처럼 땅바닥에 깔아줘서 수분 증발과 잡초의 성장을 억제한다. 사과와 배 사이에 보리수는 대표적인 질소고정 나무로 콩과 함께 땅을 비옥하게 해준다.
사람이 때마다 해충약을 뿌리고 살균소독을 하며 밑거름과 웃거름을 넣어주고 잡초를 뽑아야 할 수고들을 이처럼 저들끼리 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가끔 들러 관찰하고 다듬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우아한 텃밭 가드닝이 가능한 키친가든의 광경이다.

 

글 이진호 하이원리조트 애플체인사업부 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