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에세이] 만개할 봄을 기다리는 떨림
[정원 에세이] 만개할 봄을 기다리는 떨림
  • 전영호 집필위원
  • 승인 2020.04.02 10:35
  • 호수 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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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는 호위무사의 철갑처럼 위용과 엄격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면 수피 는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나무는 모든 귀중한 것들을 수피 속에 저장한 채 한겨울을 버틸 수 있었습 니다. 나무가 막 죽음을 맞이했을지라도 수피는 여전히 나무의 죽음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딱따구리 에 의해 구멍이 뚫리고 보이지 않는 틈으로 미세한 균이 침투하여 은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지라 도, 제 빛깔의 수피를 간직하고 있는 한 나무는 여전히 근사해 보입니다. 수피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 부터 나무는 초라해집니다. 수피는 나무가 완전히 죽고 난 후에도 한동안 그대로 유지됩니다. 나무 가 속으로 와해되어가는 동안에도 수피는 아무런 내색 없이 나무의 외형을 유지시킵니다. 그러나 아 무리 완강한 수피라도 언젠가 나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인을 잃은 호위무사는 이제 주인 의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늙은 집사가 됩니다. 늙은 집사는 주인의 모든 것이 드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주인의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 차윤정의 <나무의 죽음> 중에서 


따듯한 봄 햇살을 한껏 느낄 수 있는 4월이 찾아왔습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주위를 둘러보면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보이는 게 마냥 넋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계절입니다. 쉴 틈 없이 일을 진행하다 보면 가끔은 지난 겨울이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4월의 정원은 굉장히 바쁩니다. 수천 가지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이제는 제법 주변의 나무들도 초록의 기운을 뽐내게 됩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그 각양각색의 꽃들을 위한 달이라고 불리울 만큼 1년 초화가 주인공이 되는 달이기도 하죠. 벌써 피고 진 꽃들도 있을 테고 아직 싹이 올라오지 않은 여름의 숙근초들도 함께 자라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화단 안에서 발 한번 잘못 디뎠다가는 어린 순을 밟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됩니다. 


봄 정원의 주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단연 꽃이겠죠. 가끔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나무처럼 꽃들의 수명도 오래 갔으면 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그리 오래가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부터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생겼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활짝 핀 꽃들을 좋아합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꽃이 피기 전 꽃몽우리 진 시기도 기다리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전 언젠가부터 꽃이 색깔이 드러내기 전 꽃몽우리 진 모습이 가장 예쁘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활짝 핀 꽃들을 보고 있으면 ‘며칠뒤엔 저 꽃을 갈아야겠네. 무슨 꽃으로 대체하지?. 이번 주말까지는 버텨줘야 할텐 데….’ 라는 생각부터 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기 전 몽우리진 모습의 꽃을 보며 꽃이 만개했을 때를 상상하고 아름다움을 미리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게 비단 제가 일하는 정원만이 아닌 화훼단지에 출장을 가거나 다른 식물원, 수목원들을 방문하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웃지 못할 직업병이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껴야 할 정원에서 그 정원을 가꾸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애달픔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만큼 4월의 정원이 한창 바쁜 시기라는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따듯한 봄기운과 함께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수 백여 가지의 꽃들과 함께 북적이는 정원은 겨우내 없던 생기까지 돌구요. 
 
이 시기의 꽃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고유한 색깔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빨강도 진하고 어두운 빨강과 은은하고 밝은 빨강, 무겁고 탁한 노랑과 화사하고 세 련된 노랑, 포인트를 주는 진한 보라와 단아하고 차분함을 주는 옅은 보라, 노랑 빛이 돌아 살짝은 아이보리 빛깔이 나는 흰색과 때 묻은 것 없이 순수하기만한 흰색처럼 말이죠. 이러한 꽃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고 그 조화의 아
름다움을 배가 시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꽃이 예쁘게 심겨졌을 때에 느끼는 성취감과 황홀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고요. 때로는 꽃을 심고나서 더 예쁘게 심을 순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지만 항상 만족하기만 한다면 이 정원일이 지금처럼 재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 빈 화단에 심을 때는 어떻게 심어야 할까? 라는 걱정을 넘어서 막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한 평짜리 화단을 심는데도 반나절이 넘게 걸렸었죠. 빈 화단에 밑그림을 이리저리 그려보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어느정도 윤곽이 나왔구나 싶어서 여기저기 이꽃 저꽃 배치해보고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배치하고, 이거야! 싶어서 심고나서 결과물을 보면 또 성에 차지 않아서 뽑고 다시 심고 하느라 꽃도 못쓰게 되고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이 일을 몇 년 했다고 그런 시행착오는 조금 줄어들었네요. 

지금은 그때 같은 걱정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봄을 시작할 때에 하는 첫 식재가 가장 떨리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 달 말에는 말채나무를 정리하면서 남은 가지들을 모아 물병에 꽃아 놓았습니다. 종류별로 꽃아 놓으니 제법 볼만 하더군요. 때가 되면 물도 한 번씩 갈아주고 말이죠. 그러다 일이 바빠지면서 잠깐 잊고 지내다 무심코 화병을 가져다 놓은 곳을 보니 잎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봄이긴 하지만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이런 푸른 잎을 보는 게 힘든데, 이렇게 눈 앞에서 이른 봄이 찾아왔음을 것을 느끼는 게 떨리는 감정으로 다가오더군요. 

아침이 오는 소리에 봄이 왔음을 느끼고, 꽃들이 자아내는 꽃내음에 봄이 왔음을 느낍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봄이 왔음을 느끼고, 촉촉히 땅을 적셔주고 겨우내 쌓였던 먼지가 쓸려 내려감에 봄이 왔음을 느낍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여 봄이 왔음을 느끼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사무실 한켠에 자리잡은 화병에서 또다시 봄이 왔음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너무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사무실에 찾아온 작은 봄이 밖에서 더 넓은 봄으로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 거립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귀로 듣는 것 말고도 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또 뭐가 있을까요? 각자의 방법으로 봄이 오는 소리를, 그리고 향기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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