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으로 시작하는 정원 식재] '플라워 보더'
[한 컷으로 시작하는 정원 식재] '플라워 보더'
  • 이안숙 집필위원
  • 승인 2020.04.10 09:02
  • 호수 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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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정원에서 배우는 좁은 화단 가꾸기

 

‘봄’이라서 설레고, 새싹을 틔우는 ‘식물’이 있어 더 설렌다. 4월! 그 누구보다 바쁘고 즐거운 정원 생활 시즌이 되었다. 작은 화분에서부터 큰 정원까지 가드닝도 바쁘지만, 방방곡 곡 꽃 피는 봄을 놓치지 않으려면 더욱 바지런해져야 한다. 화원 앞 꽃들의 유혹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꼭 한 두 개 사 기 마련인데, 사고 나면 낭패다. 이미 꽉 짜인 정원이거나, 좁 은 정원에선 새로운 식물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원이 작을수록 해마다 변화를 주는 것은 어 렵겠지만, 늘 아름다웠으면 하는 욕심도 못지않다. 


문득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아주 오래된 정원의 화단 (border)이 떠올랐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에 필적하는 성 을 지으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다는 영국의 햄튼 코 트 궁전. 바람둥이 헨리 8세가 만들었다는 프리비 정원이 대 표 정원이라고 했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베르사이유 궁을 봐 버린 나에겐 오히려 붉은 벽돌  담장 아래 플라워 보더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무려 580m에 달한다는 플라 워 보더들은 정원의 주인공도 아닌데, 곳곳마다 다른 모습으 로 제멋을 뽐내고 있다. 

햄튼 코트 궁전은 매해 RHS 플라워쇼도 개최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16세기 초 울시 추기경이 만든 작은 노트 가든(knot garden)으로 시작되었지만, 19세기 빅토리아시대를 거치는 장대한 기간 동안 조성되었다. 궁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이탈리아식 프리비 정원, 바로크식 정원, 빅토리아식 군식 화단 등 다양한 정원이 개발되었는데, 대부분의 정원은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때 만들어졌다. 특히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식물에 관심이 많아 전 세계에서 식물을 수집하였고, 이를 키우기 위한 정원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이곳은 궁전 내 다른 곳들에 비해 담장이 유난히 낮은데, 이끼 덥수룩한 담장 지붕이 시골집 돌담을 보듯 친숙하다. 담장은 한겨울이나 봄에는 몸체 그대로 드러나지만, 여름 이후엔 관목이나 아티초크 같은 대형식물의 성장에 따라 일부 구간이 완전하게 가려져 담장 너머의 수목들을 끌어들인다. 


낮음으로 인해 플라워 보더의 배경이 되었다가, 정원의 변화와 확장을 지지해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낮은 구조물은 정원에서도 쉽게 활용 가능한데, 가벽을 세우거나 생울타리를 만들어 응용할 수 있다. 국내 정원박람회의 쇼가든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으니 올해 정원박람회에서는 눈여겨보길 권한다.    
 
반면 어수선해 보이는 플라워 보더의 모습은 ‘정원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곳은 쇼가든이 아니라 현실 화단인 것이다. 폭 1m가 조금 넘는 화단에 식물들이 몇 해나 묵었던지 빽빽하니 들어차서, 조만간 가드너의 손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꽃이 핀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은데, 수선화처럼 이미 피었다가 진 것, 별정향풀처럼 앞으로 피어야 할 것들이 뒤섞여 있다. 하이라이트는 여름이지만,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의 개화를 염두에 둔 수종들이다. 알 수 없이 비어있는 곳들도 조금 있었는데, 이 보더의 개화 콘셉트를 고려하여 나름의 식물을 제시해보았다. 따라 해야 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검토한 식물의 모습을 앞서 보여주기로 한다. 

흥미로운 식물로 아티초크가 눈에 띈다. 극명하게 거친 질감과 우월한 높이로 인해 다른 종들과 콤비네이션하여 쓰기에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햄튼 코트 궁전에서는 다른 플라워 보더에 서도 종종 등장한다. 이곳의 플라워 보더들은 색의 대비를 이용한 화려한 색감의 식물종 선정이 유달리 많은데 푸른 계열과 노란 계열의 보색대비가 고려된 듯하다.

첫째, 플라워 보더를 위한 식물 미리보기 

 

둘째, 위치별 식물 이름 알아보기  

길이가 짧거나 거실 앞에 놓인 플라워 보더라면 정면에서 보는 식물 연출을 고려하지만, 사진처럼 길을 따라 만들어진 플라워 보더는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사선으로 펼쳐진 식물 연출을 보게 된다, 즉, 플라워 보더를 보는 위치에 따라 식물 종 선정이나 배식 위치가 달라져야 한다. 

셋째, 긴 플라워보더에 적용된 식재 기법들

반복에서 느끼는 리듬 : 사진을 평면으로 정리해보니 반복적으로 사용된 식물들과 구성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아가판서스나 별정향풀처럼 일정한 간격을 주는 식물이라도 볼륨을 다르게 하여 배식하면 화단에 리듬감이 생긴다. 눈에 띄는 범부채나 에레무루스 도 구간내 위치를 살짝만 바꾸어 리듬감을 올려주고 있다. 반복의 지루함을 극복하는 리듬감을 적용해 보자.

유사성이 주는 안정감 : 강렬한 대형종 아티초크는 질감이 유사하지만 낮은 에린기움을 같이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보다 편안하 게 받아들여진다. 이때 에린기움의 식재볼륨이 아티초크보다 더 커야 균형과 안정감을 느낄수 있다. 또한 아가판서스, 알리움, 수선화, 범부채, 독일붓꽃처럼 난초잎을 가진 식물들끼리 붙여서 배식함으로써 꽃이 없을 때에도 연출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꽃이 시든 후 잎 이 지저분해지는 알리움은 뒤쪽에, 잎 자체도 아름다운 범부채나 독일붓꽃은 중간에 배식했다.

주인공을 강조하기 위한 보색 : 푸른색 계열 꽃들 사이로 보라색 계열의 꽃들을 섞어서 색감을 깊고, 풍성하게 연출하고 있다. 이 구성만이라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여기에 노란 계열의 꽃들을 부분적으로 배식해 긴장감을 부여하고 푸른색을 더욱 강조했다. 주의해야 될 점은 보색으로 사용되는 색은 소량만 사용해야지, 과도하게 사용하면 거부감이 들고,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햄튼 코트 궁전 내 또 다른 플라워 보더들 

주 정원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플라워 보더. 시골집 마루에 앉아서 보던 장과 그 앞에 붙은 화단이라는 구성은 같은데, 심어진 식물이 생소해서인
지 담장의 소재가 달라서인지 색다른 느낌이다. 보더의 위치마다 다양한 식재패턴과 식물을 사용해 지루함이 없고, 산책로와의 사이에 깔끔히 정리된 (서양)잔디띠가 있어 복잡한 식재 구성도 단정하게 보인다. 좁은 화단이라도 위치에 따라 식물 생육환경에 따라 다양한 테마를 적용할 수 있다. 또한 나만의 개성 있는 식물 연출을 테스트하기에 좁은 화단이 제격이니 일단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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