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수목생리학] 식물에도 눈이 있다
[재미있는 수목생리학] 식물에도 눈이 있다
  • 양형호 집필위원
  • 승인 2020.04.08 10:44
  • 호수 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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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눈 피토크롬

 

식물에게도 ‘눈’이 있을까? 4월이 되면 꽃피우는 대표적인 ‘비술나무’로 예를 들어보자. 이 나무는 상처 난 곳에서 흐르는 하얀 수액이 빗물이 술술 흘러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비술나무’라 부른다. 그런데 사진상 위·아래 모두 같은 나무임에도 멀리서 나무 모양을 보면 확연히 다른 나무처럼 보인다. 위쪽의 비술나무는 어린 묘목일 때 주변에 자신의 생장을 방해하는 나무가 없어 고유의 형질대로 자란 반면 오른쪽 비술나무는 어릴 때 주변에 같이 식재된 계수나무에 갇혀 생존에 필요한 빛을 찾아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생장하다 결국 나무줄기가 요가를 하듯 비정상적으로 비틀어져 마치 인위적으로 수형을 만든 분재처럼 자라게 됐다.


그렇다면 아래쪽 비술나무는 자신의 주변에 다른 나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우리가 잠들어 있는 밤에 사람들 몰래 줄기에서 손을 쑥 꺼내 주변을 더듬어 본 것은 아닐까 싶겠지만,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빛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듯이 식물도 주변의 빛을 인지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피토크롬(phytochrome)이라 부른다. 

피토크롬은 식물이 지닌 단백질 색소의 하나로 빛의 유무, 일조시간, 빛의 특성에 따라 식물의 생장이나 발육 등 식물 전체의 생리작용을 조절한다. 피토크롬이 식물의 생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한 몸처럼 자라는 '혼인목'

두 그루가 가까이 붙어 자란 나머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는 나무가 있다. 이처럼 두 그루의 나무가 이웃해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을 두 나무가 결혼했다고 해서 혼인목(婚姻木)이라 부르는데 제주 상효원에 가도 아름다운 곰솔 혼인목을 만날 수 있다.혼인목은 피토크롬의 기능에 의해 서로가 마주보는 방향으로는 가지를 뻗지 않고 장애물이 없는 쪽으로만 가지를 뻗어 자란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가듯 혼인목도 두 나무가 병해충이나 바람에 대해 서로 상대방을 보호해 주며 살아간다.이렇게 두 나무가 어우러져 부부처럼 함께 살아가다 인위적으로 한쪽 나무를 베거나 옮기게 되면 홀로 남은 나무는 홀아비나 과부가 외롭듯이 정상적인 나무로 생장하기 어렵다. 숲은 이렇게 수많은 나무들이 다양한 혼인목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숲 공동체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
로 식물의 눈인 피토크롬이다.

사진 속 나무는 국립수목원 양치식물원에 식재된 향나무인데 얼마 전 태풍의 피해를 입어 혼인목의 형태를 잃게 됐다.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지점에 다른 향나무가 식재되어 있었는데 태풍 피해로 쓰러져 지금은 정리되어 사라졌다.지금 살아남은 향나무는 이전에는 혼인목 형태로 자랐지만 지금은 파란 타원형 안에 보듯이 휑하니 비어 무거운 쪽으로 치우쳐 지지대에 의지하며 고정돼 있다.

무한생장 비결은 '피토크롬'

 

무한생장하는 나무로는 회화나무, 느티나무, 풍게나무, 귀룽나무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가지를 뻗어 자라다가 장해물을 만나면 이리저리 장해물을 피해 휘어 자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무에 따라서 빛에 반응하는 정도는 모두 다른데 피토크롬이 잘 발달해 있는 나무 가운데 한 종이 배롱나무다.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빛이 적은 방향으로는 정아 생장을 멈추고 빛이 많은 곳으로만 가지를 뻗는 유한생장을 하지만, 대부분의 활엽수는 측아를 이용해 빛이 있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가지를 뻗을 수 있는 무한생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배롱나무는 빛을 찾아 새싹을 뻗다가 주변의 다른 가지나 다른 나무를 만나면 정아를 버리고 측아로 자라 주위의 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생장하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유연할 수 있는 비결은 피토크롬을 이용해 겨울눈의 정아와 측아 성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그루가 한 몸처럼…종도 초월
 

연리목

땅에 떨어진 두 개의 종자가 운이 나빠 너무나 가까운 곳에 싹을 내고 자라게 되면 줄기가 부피 생장을 하면서 서로 붙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줄기가 붙어 서로 영양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나무를 줄기가 붙었다 하여 ‘연리목’ (連理木)이라 부른다. 사진 속에 보이는 나무는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에 전시물로 진열된 커다란 느티나무이다. 보통 느티나무가 저렇게 크려면 500년 이상 자라야 하는데 사진 속에 느티나무는 약 250년 정도 자랐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5그루가 합해진 연리목이기 때문이다.


연리지

또 두 나무가 멀리 떨어져 자라다 가지를 뻗어 서로 마주치는 가지가 붙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가지를 ‘연리지’(連理枝)라 부른다.
연리지는 연인이나 부부애를 비유하기도 하며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비유하기도 한다. 연리목과 연리지 결합은 접목 친화성이 좋은 같은 속 식물에서 쉽게 발생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두 나무가 접목해 영양분을 공유할 수 있는 성질을 이용해 접목 육종을 통하여 풍토 적응성 증대, 내병성 증대, 우수 유전형질 유지, 수형 조절, 결실기 단축 등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종이 다르더라도 접목 친화성이 같은 유전형질을 가진 식물이라면 접목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연리근

울릉도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를 내려오다 절개지에서 드러난 너도밤나무 뿌리 사진인데, 두 나무의 뿌리가 붙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나무뿌리도 서로 붙어 자랄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숲을 걷다 보면 다른 종의 나무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얼핏 보면 연리목처럼 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진은 떨어져 있고 서로 영양분을 교류하지도 않는 경우다.

 

식물의 효율적인 에너지 전략


위 사진은 제주 돈내코 계곡에서 담은 구실잣밤나무 숲을 하늘 방향으로 촬영한 모습이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렸을 때 다른 가지와 
닿는 곳을 따라 숲 틈이 생겼다. 구실잣밤나무가 자신의 곁에 다른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는 주변으로 가지를 생장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물들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피토크롬(phytochrome) 같은 다양한 생존전략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상당히 지혜롭고 똑똑하다.


백당나무와 산수국은 멀리서도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헛꽃을 만드는 식물이다.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힘겨운 생리작용이다. 그래서인지 백당나무와 산수국은 꽃을 만들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를 아끼려 곤충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헛꽃을 만들지 않는다. 에너지를 아껴 꼭 필요한 곳으로 보내려는 생존전략이다. 좌측 백당나무와 산수국은 나뭇잎이 꽃을 가리지 않아 헛꽃을 가득 피운 반면, 우측의 사진들은 나뭇잎에 꽃이 가려지면서 헛꽃을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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