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원] 작은 정원이 그려야 할 청사진 ‘꿈결같은 세상’
[개인정원] 작은 정원이 그려야 할 청사진 ‘꿈결같은 세상’
  • 오슬기 기자
  • 승인 2020.05.19 14:07
  • 호수 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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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정현경·한상주 부부의 주택정원

 

“살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마리 퀴리(Marie Curie)의 명언 중 하나다. 오랜 탐구와 실험 끝에 방사능 원소인 ‘라듐’과 ‘폴로듐’을 발견한 마리는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최초로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했고 원자력 시대를 연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런 마리 퀴리가 되길 꿈꾸던 소녀가 성숙한 여인이 되어 조성한 정원이 있다. 바로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정현경·한상주 부부의 ‘꿈결같은 세상’이다. 이 정원은 부인인 정현경씨가 연구원이 되어 마치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듯 공부와 기록을 병행하며 8년동안 일군 곳이다. 그래서인지 초본부터 관목까지 그 식물의 계절별 성질과 관리법 등 식물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 기초가 탄탄한 정원이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주택정원이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정교한 식재설계의 미학이 돋보이는 정현경·한상주 부부의 ‘꿈결같은 세상’을 소개한다. 

 


헛헛함에 시작된 식물 놀이

 

약대를 졸업하고 심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정현경씨는 현재 자신만의 정원을 연구하며 삶의 낙을 찾았다. 결혼 전 남편으로부터 부부의 연을 맺어도 공부는 계속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아이만 낳으면 될 줄 알았던 ‘집안 일’의 범위가 누군가의 어머니로, 누군가의 며느리로, 누군가의 딸로 살며 넓어지자 공부를 다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탓인지 현경씨는 헛헛함이 커져 아파트에 살면서 집이 미어터지도록 식물을 키웠다. 실내식물이 감당이 안 되기 시작하자 부부는 마당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현경씨의 첫 식물은 ‘행운목’이었다. 임신하고 키우기 시작했던 행운목이 시름시름 앓자 그는 행운목을 반으로 잘라 삽목을 했다. 그랬더니 시들던 행운목이 힘을 얻는 것을 보고 식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행운목이 그녀의 식물 사랑에 방아쇠를 당기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더랬다. 넓진 않지만, 마당 관리를 열심히 하시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늘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 남아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당에서 정원을 관리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그녀에게 식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딸 자식을 시집보낸 뒤 비워진 마음을 정원 일로 몰두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식물에 대한 관심이 응집되어서인지 그녀의 식물 놀이는 그저 ‘놀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계절별로 식물의 생장에 대한 기록을 하고, 구근 보관법을 고심해 튼튼한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방안 등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어린날의 순수함을 간직한 정원

 

“난 변치 않을래 힘없는 어른들처럼, 난 믿고 살테야 꿈결 같은 세상” 싱어송 라이터 송시현의 ‘꿈결같은 세상’의 가사다. 부부는 이 노래의 제목을 정원의 이름으로 정했다. 두 부부가 젊은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가사 내용처럼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현경씨는 “사실 정원에 있다 보면 정원이 꿈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잖아요” 라며 정원 이름을 지은 이유를 설명했다.  


노랫말처럼 정원 ‘꿈결같은 세상’은 늘 계절에 맞는 작물로 채워져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건물 담벼락에는 1층부터 2층 옥상 꼭대기까지 이어진 인동 넝쿨이 자라고 있고, 도저히 정원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공간까지 음지에서도 잘 크고 꽃이 비교적 오래 피고 지는 수국 종류와 세덤들을 심었다. 그녀가 소유한 땅에서 흙이 보이는 곳은 죄다 초록으로 덮은 셈이다. 정원주인 현경씨는 음지와 양지 식물에 대한 이해가 깊다. 집을 짓고 나서 한참 후 예정에 없던 아파트 단지가 주변에 조성되면서 갑자기 앞산이 가려지고 살고 있는 집이 내려다보이는 상황이 되다 보니 사생활이 침해되고 차폐가 필요했다. 서울에서 사 온 대나무로 빽빽하게 1차 차폐를 하고 다시 정원의 배경과 울타리로 관목들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음지가 생겼다. 그늘에서 잘 사는 식물들의 목록을 만들고, 공부하면서 식물을 정원에 들였다. 


그녀는 초본류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새로운 식물까지 두루두루 섭렵한 식물애호가다. 식물을 공부하기 시작한 때는 ‛김태정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 꽃 이야기’라는 책이 출판됐을 즈음이다. 주말만 되면 등산을 하며 야생화를 공부하고 그런 과정에서 초본류인 음지, 양지 식물에 대한 이해가 차곡차곡 쌓였다고 한다.

 

식물의 뿌리까지 탐구하다

 

‛천재도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현경씨는 전북 전주에서부터 경기도 이천까지 왕래하며 6개월동안 식물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매주 하루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3시간이 넘는 먼 길을 달려온 그녀에게 주변에서는 ‛정원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정원 일을 놀이로 보며 즐겨온 결과물이다. 이런 열정 탓인지 식재에 대한 지식은 뿌리부터 시작되는데, 그녀는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뿌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집 앞의 작은 텃밭은 40cm 정도의 토심을 고려해 뿌리가 길게 뻗는 식물은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얕게 뿌리내리는 식물 위주로 식재를 했다. 그런가 하면 집을 짓고 준공 조경을 할때 부부의 의사와 상관 없이 정원을 빙 둘러 울타리로 심겨진 쥐똥나무는 집 뒤뜰의 몇 그루만 남기고 다 뽑게 되었다. 쥐똥나무의 뿌리가 깊고 넓게 자라 초본 식물들의 생장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뿌리와 줄기의 높이까지 고려하니 정원에 식물을 들일 때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심겨진 식물들은 구석구석 힘없이 쓰러진 것이 하나 없다. 또한 잎의 넓이,폭, 질감 등에 따라 식물들의 조화와 심겨진 선형, 질감, 정원의 분위기가 달라지니 이 또한 식재시 고려할 부분이다. 특히 ‛포트를 활용한 식재’는 부부의 정원에서 가장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정원을 빛나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땅을 파서 안에 큰 화분을 묻고 그 화분보다 한 단계 작은 화분을 교체하는 시스템인데, 온실이나 옥상에서 미리 생장시킨 식물을 잘 관찰해 높이와 색을 보고 무엇을 정원에 넣을 지 생각한 뒤 화분에 옮겨 담는다. 즉 정원에 포인트가 되는 계절 식물을 자주 교체하는 방법으로 굳이 정원에서 흙을 파지 않고 여러 화분에 키워 화분만 교체함으로써 쉽게 중점이 되는 식물들을 교체할 수 있다. 


이렇게 포트를 활용하면 정원 분위기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다. 어제는 튤립이, 오늘은 수선화가 자리를 대신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그녀가 오랫동안 정원의 디자인을 얼마나 고민했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가 포트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국내 가든센터인 ‘조이가든’을 발견하고부터다.

현경씨는 “포트 작업이 단순해 보이는데, 사실 어려움도 많습니다. 물을 줄 때 파묻은 포트와 화분 사이에 물이 들어가면 달팽이가 많이 생겨요. 그래서 포트를 자주 꺼내 주변을 세밀하게 살펴야 해요”라고 설명한다.

 

4개의 원이 선사하는 네가지 정원 테마

 

연구하듯 차근차근 꾸려간 텃밭이 지금의 정원이 되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현재 꿈결같은 세상 정원은 4가지 테마를 갖춘 정원으로 발돋움했다. 현경씨는 “처음엔 야생화가 너무 좋아 야생화를 심고 방치했어요. 그런데 관리를 안 해주면 조형적인 맛이 없어 고심하던 끝에, 어느 정도 사람의 손이 타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적절한 시기에 교육을 받으며 스승님을 잘 만났어요. 스승님이 제안한대로 4개의 원으로 구역을 나눠서 테마를 잡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첫번째 원은 정원의 입구에 위치해 있다. 남편이 꿈꿔오던 잔디원으로 키 4미터의 금송 옆에 위치해 다양한 야생화들과 허브, 스카이로켓 등의 관목이 초본류들과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디딤석 너머에 있는 두 번째 원은 드라이 가든이다. 본래 그래스 원이라고 불렀지만, 조경업자들이 깔아준 잔디를 들어내고 저관리형 식물을 심는 과정에서 드라이 가든으로 지칭한 것이 입에 붙었다고 한다.

나머지 두 개의 원은 저면관수용 포트를 땅에 묻어 실내나 옥상정원에서 대기하던 계절 초화를 포트화분째 옮겨 심어 시시때때로 계절마다 화려하게 바뀌는 정원이다.기자가 정원을 찾았던 4월의 정원에는 50종이 넘는 튤립들이 장관이었다. 작년에 종묘회사에서 선착순 예약으로 튤립 세트를 구매해 키워 온 것이라고 한다. 남편 한상주씨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는데, 집에서 에버랜드를 보는 기분이죠”라고 말한다.  


남편 마음도 녹인 ‘꽃에 위로받는 삶’

그녀는 정원을 소유하면서 인내와 노동의 기쁨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식물들은 내가 해준만큼 자라요.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일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죠. 꽃을 키운다는 것은 사람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작업이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정원일의 값진 깨달음 때문일까. 현경씨 개인의 취미에 가까웠던 정원 놀이가 남편 상주씨에게까지 전파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남편 상주씨는 처음엔 수동적인 조력자였으나 담배를 피러 나왔다 현경씨가 예쁘게 일군 정원에서 잡초를 발견하고 보기가 싫어 제초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때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관수용 포트 사이에 자꾸만 생겨나는 달팽이들을 하루 200마리 이상 떼어내는 등 주체적인 정원주로 탈바꿈했다. 그는 “달팽이는 해가 지면 나오는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후레쉬를 들고 손수 떼어내야 하는데, 보통 애정으로는 안되는 일이죠”라고 말한다.현경씨는 “이이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정원을 가꾸기 위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건데 아쉬워요.”라며 애정을 과시했다.


정원관리의 원칙 ‘오래 보고, 살피기’

 

독학에 가까운 공부로 식재에 대해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현경씨는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오래 보고, 살피기’라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채워 나갔다. 누구보다 자신이 정원 공간을 오래 볼 수 있으니 전문가보다 더 많은 관찰과 고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옥상 정원에는 관리가 까다로운 여러 종류의 튤립 원종부터 팥꽃나무까지 다양한 초화류와 묘목을 볼 수 있다. 포트만 바꾸면 되니 최대한 잘 관찰하다가 어울리는 것을 땅에 묻어둔 포트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그녀의 식물 선택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혼자서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원을 관리하다보면 큰 관목을 옮기느라 포크레인이나 트럭같은 중장비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상황을 피하기위한 방안이다. 중장비를 이용하면 정원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저는 작은 호미 하나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가능하다면 저 혼자 다룰 수 있는 식물 크기를 선호한답니다” 


현경씨는 직접 흙과 관목을 사오기 위해 트럭을 구매해 필요할 때마다 운전을 한다. 종자를 고르는 것부터 옮기고, 기르고 심는 것, 즉 정원관리의 A to Z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정원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하고 있는 현경씨지만, 가족들의 걱정을 피해가긴 어려웠다. 그들의 걱정을 잠재운 것은 꽃이 만발한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남편과 양가 어른들을 비롯한 자식들까지 현경씨가 일군 정원을 보곤,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여 그녀의 정원 활동을 인정하고 지지해주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정원 일을 합니다. 봄에는 더 바빠지곤 하죠, 그러다 보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체력을 단련해요. 아파트에 거주할 때 2년 동안 요가원에 다녔었는데, 그 기억을 기초 삼아 지금은 혼자서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와 108배로 몸을 푼 뒤 정원 일을 시작해요”라고 말한다.정원 놀이는 단순히 현장에만 치중되어 있진 않다. 매년 한 해 정원의 모습을 기록하고, 초화류 및 관목, 묘목들의 관리법을 메모하고, 정원의 사진을 담아 자신만의 ‛사진집’을 책으로 만든다. 사진을 찍고 생장에 대해 
기록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것도 쌓이니 그녀만의 정원 관리 노하우가 되었다.

 

작은 정원으로 세간에 인정받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지난 2018년 산림청에서 진행한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꿈결같은 세상’이 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에게 일반적인 전원주택 정원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공간 활용을 훌륭하게 해 크기에 맞는 식재연출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이웃집과의 경계처리, 좁은 공간에 서의 디테일한 디자인 및 공간연출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평이었다.  


이에 대해 남편은 “아내가 워낙 완벽주의잡니다. 하나에 꽂히면 깊게 파고드는 편이라 가끔은 무서울 때가 있어요. 식물원에 가게되면 어떤 때는 내 아내가 조성을 더 예쁘게 할 것같다는 팔불출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라며 아내 정씨에 대한 깊은 신뢰를 자랑한다. 정원을 가꾸는 삶을 즐기며, 자신만의 식물과 조경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이 부부가 앞으로 꾸려가게 될 정원의 모습은 어떨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궁금한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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