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세이] 무궁화, 백일동안 천 송이의 꽃을 피우다
[정원에세이] 무궁화, 백일동안 천 송이의 꽃을 피우다
  • 전영호 집필위원
  • 승인 2020.08.05 14:50
  • 호수 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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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입니다. 이제는 한낮에는 돌아다니기 힘들 만큼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무더운 햇살이야 그냥 더우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어도 높은 습도 때문에 불쾌지수가 확 올라가 버립니다. 밖에서 일하기 힘든 건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우거진 식물들 사이로 고온다습한 기후에 계속 노출이 되면 식물들도 흰가루병 같은 병에 쉽게 걸리게 됩니다. 미리미리 방제한다고는 하나, 이맘때쯤 되면 하나둘씩 흰가루병 같은 병을 동반한 식물들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런 개체들은 예쁘게 꽃이 피었어도 다른 식물로의 전이를 막기 위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제거해주죠. 이런 작업을 할 때면 ‘올해는 신경 쓴다고 썼는데 왜 저길 못 봤지? 1년을 기다려 꽃을 피웠는데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되는구나.’라는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일하면서 아쉬웠던 점을 한번 되새기는 시간도 갖게 됩니다. 

또 어느 해인가, 장맛비가 정말 무섭게 쏟아졌던 날이 있었습니다. 2~3일은 정말 쉬지 않고 거센 비가 내렸습니다. 수목원의 개울들은 불어난 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범람하듯 쏟아져 내리고,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식물들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은 조금 더 아름다움을 뽐내야 할 꽃들이 떨어지고,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던 나무들이 뽑혀 있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에 먹구름 가득한 하늘만 하염없이 지켜봤었죠. 그러다 비가 조금 그쳤다 싶으면, 화단으로 난 물길을 잡으러 우비와 장화를 챙겨 신고 정원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거센 비에 닦아 놓았던 배수로를 재정비하고, 혹시 모를 다른 피해가 없는지 살펴봅니다. 

비가 온 후 맞이하는 정원 일은 여름의 정원 일 중에서 가장 양이 많습니다. 골칫거리도 많고요. 망가진 꽃들을 교체하고 쓰러진 식물들은 다시 세워줍니다. 다시 잡초도 무성해지고, 잔디들도 키가 부쩍 자라 있습니다. 비가 올 때 숨어 있던 온갖 날벌레와 해충들이 날아다니고, 양지바른 개울가나 숲길 주변에는 몸을 말리러 나온 뱀들 덕분에 깜짝 놀라기 일쑤입니다. 거기에 높은 습도는 이 모든 작업을 하는데 큰 방해요소가 됩니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나씩 하나씩 끝내야겠죠.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고생스러움을 샤워와 차가운 음료수 한잔으로 바로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함께한 동료들과 계획했던 일을 끝내고 나서의 뿌듯함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8월의 정원 일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정원의 내면에 숨어 있습니다. 매일 같이 피고 지는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계절이고, 녹음이 가득한 교목들의 초록 잎을 감상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7월 말, 8월 초면 수많은 품종의 무궁화를 전시합니다. 흔히 무궁화를 생각하면 그냥 나라를 대표하는 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또한, 관리도 힘들며 진딧물도 많이 끼기 때문에 무궁화는 다른 관목보다 조경수로는 많이 쓰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심에서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 치면, 관공서 그리고 학교 정도일 것입니다. 국화(國花)인데도 말이죠.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일제강점기 전에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나라 곳곳에 무궁화가 많이 자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의 말살 정책으로 인해 즐비했던 무궁화가 베어지고, 불태워지는 수모를 겪으며 그 후엔 급격히 줄어버린 개체 때문인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지워졌다고 합니다. 

저조차도 사실 무궁화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일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개화가 시작된 무궁화는 매일같이 꽃을 피웁니다. 무더운 여름철 백 일간 한그루에서 천여 송이 이상의 꽃을 피웁니다.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더구나 천여 송이 이상의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 그 에너지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겠죠. 해마다 무궁화의 수형과 다음에 더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해 전지하는 이유도 있지만, 여러 꽃송이를 피우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 키가 큰 무궁화는 찾기가 힘듭니다. 

무궁화는 화색도 굉장히 다양하여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품종의 무궁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냥 단지 ‘어? 무궁화네.’가 아니라 ‘와! 무궁화다’라는 감탄사처럼 말이죠. 

무궁화를 색상별로 분류할 때는 중앙의 붉은 무늬와 배경색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배달계, 백단심계, 홍단심계, 청단심계, 아사달계로 말이죠. 그중에 꽃잎에 무늬가 있는 것이 아사달계인데, 저는 아사달계 무궁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며칠 전에는 화훼 단지에서 겹 무궁화 품종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왜 이렇게 반가웠던지 이리저리 사진도 찍어 보고 결국엔 보라색 무궁화 한그루를 구매했습니다.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지면, 국화(國花)인데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무궁화의 설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무궁화의 영어 이름은 ‘Rose of Sharon’입니다. 해석하면 ‘성스러운 땅에 피어나는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죠. 이처럼 아름다운 꽃에 필요한 건 큰 게 아닙니다. 그저 작은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전국의 어느 수목원을 가도 무궁화원은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치셨다면, 이번에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혼자든 친구와 혹은 연인과 함께 한번 찾아가 보세요. 다른 정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뭉클함과 경건해지는 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전영호 (아침고요수목원 식물연구부 식재디자인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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