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식물원에 산다] 8월, 식물들의 성장을 위한 경쟁
[나는 오늘도 식물원에 산다] 8월, 식물들의 성장을 위한 경쟁
  • 이정철 집필위원
  • 승인 2020.08.05 15:39
  • 호수 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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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경쟁을 한다

식물원의 식물은 한 해 동안 성장한다. 1년 초, 다년초, 목본류 할 것 없이 최상의 생육조건에서 자라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이제 정점에 다다를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상록으로 겨울을 나는 식물도 성장은 여름의 끝자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기에 많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해야 안정적으로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래서 식물은 이종 혹은 동종끼리 경쟁을 한다. 
식물들은 저마다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같은 식물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른 양상의 생존전략을 구사하는 경우도 많다.

 

톱풀
톱풀

 

종자번식 경쟁, 톱풀의 선택

여름이 완연한 이맘때면 어김없이 존재가 드러나는 식물이 있다. 바로 톱풀이다. 잎의 생김새가 마치 톱날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들판에 흔한 꽃이다. 누군가에게 식물을 권유할 때 톱풀을 권한다면 그 사람은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톱풀은 특별한 관리 없이 물만 줘도 잘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톱풀은 봄에 싹이 돋아나기 시작해 여름에 자신의 지상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꽃을 피운다. 왜 그럴까? 톱풀이 자라는 환경은 전형적인 초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장마기에 접어든 초지는 잡초의 과다 성장으로 적은 양의 꽃으로는 종자번식 경쟁에서 불리하다. 
자연상태에서는 과다한 꽃의 무게를 인접한 잡초들이 받쳐주어 눕지 않는다. 하지만 정원에 심어진 경우는 그러한 풀과 인접하지 않게 심기 때문에 축 늘어진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 또 톱풀은 전형적으로 많은 양의 해가 필요하다. 종자가 떨어지면 이듬해 발아가 되어도 모주의 광량, 양분, 수분의 독식으로 후대의 어린싹은 자라기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줄기가 늘어져 종자를 떨어뜨리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정원에 톱풀이 늘어져 있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섬기린초
섬기린초

 

초본과 목본의 중간 섬기린초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 세덤류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식물을 고른다면 섬기린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울릉도가 고향인 특산식물이다. 꽃 모양이 기린 뿔과 비슷해서 붙여졌다.

우리나라에서 정원에 심는 세덤류는 대체로 500여 종에 달하는데, 그중에서 섬기린초는 생육 측면에서 제일 강하다. 본래 자생지의 특성을 보면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 내건성이 좋고 급격한 온도변화에도 강한 것이 특성이다. 이런 섬기린초를 건조에 강하다는 이유로 인공지반이나 관리가 덜 된 곳에 심는데, 정원에 심으면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된다. 

척박한 토양과 간헐적 관수에서 20cm 내외의 초장을 보이지만, 관수와 비배관리가 적절히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초장이 40cm에 이르기 때문이다. 본래 자라는 생육속도를 넘어서면 줄기의 경도가 낮아져 작은 꽃을 과다하게 만들어낸다. 이 식물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꽃이 아래로 쳐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섬기린초가 초본의 특성보다는 관목의 특성을 가지는데 기인한다. 초본과 목본의 차이는 지상부에 생장점이 살아서 이듬해 싹을 틔우는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섬기린초는 중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생지 경사면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줄기 하부의 생장점을 발달시키기 위해 아래로 쳐져 채광량을 높이는데, 정원에서는 과다생장으로 꽃이 무거워져 쳐지니 상황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섬기린초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종자 결실과 전파 못지않게, 줄기 하부의 생장점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매발톱 종자
매발톱 종자

 

한 단계 더 발전한 매발톱의 종자번식

봄철 독특한 꽃 생김새 하면 빠질 수 없는 식물이 매발톱이다. 꽃잎 뒷부분의 꿀주머니가 매의 발톱같이 구부러진 모양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 산야 어디에서나 자생하고 있다. 여름철 고온기에 매발톱 종자는 검은색으로 완숙하여 땅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종자 꼬투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매발톱 종자 꼬투리를 만져본 분은 알겠지만, 꼬투리는 벌어져 있는데 흔들면 달그락달그락 소리만 나고 정작 종자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꼬투리에 진득한 액체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식물은 종자를 멀리 퍼트리기 위해 날아가거나, 동물에 붙거나, 멀리 쏘거나, 곤충을 유인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발아를 위해 노력한다. 매발톱은 그 방법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종자가 그러하듯 종자가 땅에 떨어져 발아를 하거나 발아를 하기 위해 휴면을 준비해야 한다. 매발톱 종자는 발아를 하지 않으면 강제휴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토양입자에 딱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꼬투리를 열어놓고 바람에 흔들려 종자가 튀어나갈 때, 점액질을 묻혀 땅에 떨어지면 토양입지에 붙어 발아하게 된다. 사실 이런 특성은 매발톱의 경우 고온에서 입분화가 되므로 땅에 떨어지면 1주일 후 발아하게 되는 특성과도 매우 밀접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식물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존재의 의미가 아니라 생존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구는 인간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존하는 곳이다. 이 더운 여름날 식물들은 각자 생존과 삶이라는 경계에서 오늘도 많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한 식물을 찾아 보살피는 것은 진정한 가드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드너는 식물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정철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장)

 

- 월간가드닝 8월호 ‘나는 오늘도 식물원에 산다’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더 다양한 식물들의 성장경쟁은 월간가드닝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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