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세이]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정원에세이]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 전영호 집필위원
  • 승인 2020.09.03 10:31
  • 호수 8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어느새 9월입니다. 올해처럼 가을을 기다렸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장맛비가 내렸습니다. 하늘이 뚫렸나 싶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많은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멈추고 잠깐 둘러본 정원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화단의 흙들이 전부 흘러 관람로를 가득 메우고, 배수로 곳곳과 계곡 울타리들은 흘러 내리는 물의 양을 견디지 못해 망가졌습니다. 큰 교목들도 속절없이 쓰러지고, 심어 놓은 꽃들도 전부 녹아내렸습니다. 

수해피해가 심한 곳은 ‘정말 여기가 이랬었나.’ 싶을 정도로 변해있었죠. 바라만 볼 수 없는 노릇이라 우비를 입고 막힌 배수로를 정비하고, 쓸린 흙들을 치우고, 급히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물길을 돌렸습니다. 끝이 보이는 않는 작업 속에서 내리는 비에 젖는 건지, 흐르는 땀에 젖는 건지 모를 정도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수목원에서 일하면서 해마다 하는 수해복구지만, 올해처럼 힘든 해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여름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루 이틀 정리하고 일을 하다 보니 올 것 같지 않던 9월이 찾아왔습니다. 아직은 늦더위가 한창이라 조금 덥기는 하지만 일을 하기엔 많이 수월해진 날씨입니다. 이제 곧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도 불어올 것이고 녹음 가득했던 나무들은 저마다 단풍이 들 준비를 할 것입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여름과 비교했을 때 사뭇 달라지는 풍경처럼 일하고 있는 제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찾아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난 후 생긴 약간의 여유인지, 아니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느끼는 기분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날씨가 제법 서늘해지는 가을이 되면 봄, 여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올해도 이제 4개월밖에 안 남았구나.’라고 말이죠. 봄과 여름의 정원에서 아쉬웠던 점을 생각하고, 다가올 가을의 정원의 새로운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제 마음의 변화처럼 수목원 곳곳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동안 무성하게 자랐던 잔디들은 그 기세가 한풀 꺾입니다. 일주일 한 번씩, 많으면 두 번씩 잘랐던 잔디들은 이제 이주에 한 번 깎을 정도로 천천히 자라게 됩니다. ‘가을 향기’라 표현해도 될지 모르지만, 단풍이 들기 전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주는 좋은 내음과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수목원의 나무들은 하나, 둘 노랗고 빨갛게 물들며 가을로 접어들게 됩니다. 

가을은 사람과 식물 그리고 동물에게도 풍요로운 계절입니다. 곡식이 무르익고 하늘은 더 높고, 넓어 보이며 청량합니다. 이른 아침이면 전날 비가 내렸나 싶을 정도로 꽃잎들에 이슬이 가득합니다. 가끔 이른 아침에는 안개가 끼기도 하지만 한 달 전 만큼 덥지도 않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는 수목원을 찾는 손님들도 부쩍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멀리서 휘날리는 은은한 억새들이 보이고, 화단을 수놓은 여러 색깔의 국화들이 마냥 아름답기만 합니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슴 깊이 와닿는 말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단풍만큼 가을 정원은 매력적입니다. 여름 더위와 기나긴 장마를 이겨내고, 옹기종기 모여서 피는 쑥부쟁이와 구절초들의 군락지는 맑은 가을 햇살 아래 그 은은한 자태가 빛납니다. 나무 그늘에서 이 꽃들은 보고 있으면 한동안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화단을 가득 메운 가든멈들은 동글동글한 자태를 뽐내며 오색 빛깔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꽃을 찾아 날아온 나비와 벌들 역시 꽃을 옮겨 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긴 기다림 끝에 결실을 이룹니다. 사과, 배, 감, 대추 등 과일을 비롯해 수목원에 자생하는 나무와 풀도 제각기 아름다운 빛깔의 열매를 맺어 가을의 아름다움을 한층 높여줍니다.

기후 변화로 짧아지는 가을이 아쉽지만, 짧은 만큼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은 너무나 많습니다. 가을을 즐기는 방법도 많이 있고요. 제가 말씀드린 것 외에도 가을 정원에는 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가을 정원 안에 숨어 있는 매력과 재미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전영호 (아침고요수목원 식물연구부 식재디자인팀 주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