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재미있는 숲 이야기] 누가 도토리를 그랬을까?
[10월호 재미있는 숲 이야기] 누가 도토리를 그랬을까?
  • 양형호 집필위원
  • 승인 2020.12.14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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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거위벌레 편 

 

누가 도토리를 그랬을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도토리 몇 개 달린 참나무 잔가지들이 누군가 예리한 도구로 절단한 듯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참나무에 대한 이런 만행을 대부분 사람은 애꿎은 다람쥐나 청설모가 범인이라고 누명을 씌운다. 다람쥐와 청설모는 도토리를 먹기도 하지만 참나무 가지를 절단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용의자는 아니다. 그럼 도토리를 누가 그랬을까?

 

 

범인은 바로 너

참나무 가지를 자른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라 부르는 녀석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1cm 내외의 작은 곤충으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잔가지를 수도 없이 잘라 바닥에 떨어뜨린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딱정벌레목 거위벌레과로 연 1회 발생하는 곤충이다. 한여름에 도토리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알에서 깨어나 유충으로 부화한다. 도토리 과육을 먹고 생활하다가 20여 일 후에 도토리 껍질을 뚫고 나와 땅속에서 흙집을 지어 겨울을 난다. 이듬해 5월 하순에 번데기가 되어 3~4주가 지나 성충으로 우화된다. 성충이 된 도토리거위벌레는 참나무에 기어올라 다시 도토리를 뚫고 알을 낳고 가지를 잘라 떨어뜨린다. 도토리에 알을 낳는 과정은 도토리 깍지 부분에 기다란 주둥이 끝에서 가위처럼 작은 집게 입이 나온다. 도토리에 아주 조금씩 구멍을 뚫게 된다. 

 

 

왜 도토리 깍지에 구멍 뚫을까?

도토리거위벌레가 도토리가 다 여물기 전에 깨어나 도토리 열매가 아닌 깍지에 구멍을 뚫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도토리가 덜 여물어야 껍질이 단단하지 않아 구멍 뚫기가 쉽다. 두 번째는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덜 익은 도토리 과육이 연해 먹기 쉽다. 세 번째는 도토리는 열매가 다 익으면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많아지는데 덜 여문 도토리는 타닌 성분이 적어 애벌레가 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암컷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기 위해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있으면 암컷의 페르몬 냄새를 맡은 수컷이 찾아와 짝짓기한다. 도토리거위벌레 암컷은 보통 20~30여 개의 알을 낳는데, 한 개의 도토리 구멍에는 1개나 많아야 2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산란이 끝나면 알이 빠지지 않게 도토리 구멍에 입구를 막는 작업으로 산란을 마무리한다. 산란이 끝난 암컷 도토리거위벌레는 가지 쪽으로 이동해서 가지를 자르기 시작하는데 한 개의 가지를 자르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지를 자르는 작업은 잘리는 쪽과 반대쪽 양쪽에서 번갈아 가면서 자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지가 다 잘릴 무렵이 되면 남는 쪽으로 이동해 잘린 가지와 함께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가끔은 가지와 함께 떨어지는 도토리거위벌레도 있다. 


저장해 둔 우수한 유전자 

도토리거위벌레 암컷이 알을 낳고 가지를 자르는 동안 수컷은 오로지 자신의 유전자인 정자를 지키기 위해 주변을 경계서는 일만 한다. 다른 수컷 도토리거위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다른 수컷이 나타나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결국은 더 힘센 수컷 도토리거위벌레 암컷을 차지하게 되고 다시 짝짓기를 시작한다. 동물은 한번 짝짓기하면 바로 수정이 되어 다시 짝짓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곤충은 짝짓기하면 바로 수정하지 않고 몸속에 들어온 정자를 정자 보관소에 저장한다. 산란할 때가 오면 정자를 수정해서 알을 낳기 때문에 여러 번 짝짓기가 가능하다. 힘센 수컷으로부터 좀 더 우수한 유전자를 받기 위한 곤충들의 생존전략이다.

 

 

잎과 함께 떨어지는 이유 

도토리거위벌레 암컷이 긴 작업시간 끝에 잘린 가지는 바로 땅에 낙하하지 않고 바람을 타듯 천천히 떨어진다. 바람개비 날개처럼 잎을 2~3장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토리거위벌레가 산란한 도토리만 땅에 떨어트리지 않고 잎과 함께 가지를 떨어트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넓은 잎이 공기에 저항을 주어 천천히 떨어져 도토리 안에 들어 있는 알이 충격을 적게 받고 밖으로 튕겨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는 잎이 시들기 전까지 광합성 작용을 계속하여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과육을 먹고 성충이 되기까지 도토리가 신선하게 유지되게 영양분을 계속 공급하기 위해서다.

잎과 함께 떨어진 도토리 깍지에는 까맣게 메꿔진 구멍 자국을 볼 수 있다. 도토리 깍지를 벗기고 까만 부분을 쪼개보면 작은 쌀알 같은 알이 들어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렇게 도토리 과육을 다 먹고 자란 애벌레는 도토리 껍질을 뚫고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긴 겨울을 난다. 이듬해 여름에 번데기가 되어 우화하여 성충이 된다. 

 

 

자연의 한 구성원인 도토리거위벌레 

우리나라 숲속 참나무 대부분이 도토리거위벌레의 피해를 본다. 심지어는 도심에 심어진 대왕참나무도 도토리거위벌레가 산란하고 떨어트린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참나무들이 도토리거위벌레로 인해 도토리가 많이 달리지 않으며,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산짐승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생태계는 어떤 특정한 종이 무한대로 번식하고 확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생태 공간과 역할을 적절히 분배해 다양한 종이 생태계의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한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자연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탁월한 조절 능력이 있다.

숲에는 오로지 참나무에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곤충이 50여 종이나 있다. 도토리거위벌레 또한 숲에서 참나무에 의지하고 도토리를 섭식하고 살아가는 한 생명체일 뿐이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참나무 가지를 많이 자른다고 해도 참나무가 죽거나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산짐승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구에 같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에 자신들만의 관점으로 유익함을 따져 여러 종의 유해 동·식물을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정한 유해 동·식물들도 당당하게 자연의 한 축을 담당하며 자연생태를 안정시키는 소중한 생명체들이다. 

 

양형호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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