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호 서평]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1월호 서평]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 이근향 편집위원
  • 승인 2021.01.06 09:50
  • 호수 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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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식물에 새겨져 있는 문화 바코드 읽기

 

 

 

앞으로 이달의 서평을 통해 그동안 일상에서 식물을 만나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우연히 마주쳤던, 그렇지만 인상 깊었던 책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가 고정희 작가의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이다.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식물 공부는 늘 어려웠다. 나무를 가까이하는 일을 하지만, 식물은 좀처럼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더욱이 ‘식물, 문화가 되다’라는 슬로건을 가진 서울식물원의 전시교육 업무를 맡게 된 나로선 식물 공부가 정말 커다란 과제였다. 

서울식물원이 도심형 식물원으로 일상에서 식물과 만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식물 문화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책 읽기는 식물과 관련된 신화부터, 때로는 자화상이 담긴 식물로, 식물을 좋아하는 철학자의 노트로, 독초가 실마리인 추리소설로 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식물과 역사를 비롯해 예술, 철학, 과학, 종교, 신화, 소설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식물을 통해 바라본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식물도감이나 전공 서적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식물의 세상으로 안내하는 호기심의 원천이 되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 고정희 작가의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첫 번째 책으로 꼽은 이유는 제목이 주는 유혹이다. 식물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고심하던 차에 제목이 강렬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래전 「고정희의 독일정원이야기_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 도시를 가다」(2006)를 통해 처음 만났던 작가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반했다. 작가가 도시설계 및 조경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매료되었다. 

작가는 사람과 함께 한 식물의 오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화와 여러 문화권의 신화를 비교 후 접점이 있는 네 가지 식물 진달래, 복사나무, 버드나무, 연꽃을 찾았다. 그 외에도 몇몇 식물을 더해 다양한 관범에서 해석하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중 인상깊었던 것은 ‘버드나무’의 이야기다. 서울식물원과도 연관이 있어 더 와닿는다. 서울식물원에는 1928년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양천배수펌프장(현.마곡문화관) 건물이 있다. 버드나무는 누가 심지 않았는데 건물 벽면에 붙어 온몸으로 강한 생명력을 뿜어냈다. 그 당시 나의 관심은 온통 이 버드나무였는데, 버드나무를 책에서 만난 것이다.

“버드나무는 여러모로 경계에 서 있는 식물이다. 물과 뭍의 경계에 서 있고,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기도 했다.” 6장, 물과 뭍의 경계에 서 있는 버드나무 중에서

인용 부분은 서울식물원의 지사적 특성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버드나무의 마법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또한 해모수와 유화부인의 이야기부터, 셰익스피어의 소설 속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의 죽음에서 버드나무를 보여준다. 여기에 버드나무의 물을 정화하는 능력부터 살리신산의 치료 효과까지 작가의 버드나무 이야기는 광범위하며 거침이 없다. 

작가는 1920년대 그려진 단군의 초상에서 나뭇잎처럼 보이는 어깨장식과 허리장식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것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길거리에서 보는 흔한 나무가 우리 조상을 사로잡았는지 의구심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의구심은 한 나무를 통해 조상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역사를 만나기도 하는 상상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버드나무를 만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신화나 신비한 요소를 더해 지어낸 이야기가 다소 부담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식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하는 의심도 든다. 그러나 그동안 노력했음에도 식물과 친구가 되기 어려웠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각의 식물 이야기를 통해 식물과 소통하게 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책소개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식물에 새겨져 있는 문화 바코드 읽기

이 책은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해온 식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살펴본다. 튤립, 진달래, 복사꽃, 버드나무, 연꽃, 사과나무, 은행나무 등 우리 신화와 전설이 담긴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서구문화권에서 주목받았던 식물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식물에 대한 선입견을 돌아본다. 책을 읽다보면, 신화 속 등장하는 나무들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식물을 통해 문화의 원류가 무엇인지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고정희 지음 | 나무도시 | 304쪽 | 16,800원

 

이근향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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